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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아르헨티나 국민의 참을성

    서유근 부에노스아이레스 특파원

    발행일 : 2024.04.02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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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남미 전문가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에 따른 보조금과 복지 혜택을 마약에, 이를 장기간 끊어내지 못했던 그 나라 국민을 마약 중독자에 비유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며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일단 그 마약을 없애고 있다. 마약의 중독성이 워낙 강해 재활 초기부터 치료가 혹독하고 완치에 실패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한다. 집권 100일을 갓 넘긴 밀레이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표방하며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가격을 기업 자유에 맡긴 아르헨티나 역시 혹독한 시기를 겪고 있다.

    동네 마트만 가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가격 때문에 손님들은 카트가 넘칠 정도로 물건을 담으며 사재기를 했다. 포퓰리스트 정부가 보조금과 기업 통제로 가격을 인위적으로 찍어누른 탓에 가능했다. 어쨌든 소비자 입장에선 사재기할 여력은 있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로 보조금과 가격 통제가 사라지자 실질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 요샌 카트의 절반도 못 채우는 손님이 대다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새 정부의 고강도 개혁에 당장 국민 개개인의 지갑은 얇아졌다.

    이론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과도한 포퓰리즘은 파멸을 맞게 돼있다. 그렇지만 빈곤율이 40%가 넘는 아르헨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개개인에게 이론이니 국가 미래니 하며 설득하는 건 쉽지 않다. 이쯤 되면 그들이 금단증세를 이기지 못해 정권을 뒤엎고 다시 포퓰리스트들을 찾아도 이상하지 않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이 악순환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 밀레이의 고강도 개혁을 향후 6개월 이상 지켜볼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46%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보다 15%포인트 이상 늘었다. 경제 사정이 나빠졌는데도 앞으로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정부 호소에 이전보다 많은 지지를 보내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만 해도 보조금에 취한 채 오늘만을 위한 소비를 하던 이들이 맞나 싶다. 국가의 먼 미래를 위해 일심동체로 고육지책을 견디는 것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100여 년 전 세계 5대 경제 강국에 들었던 저력이 위기 끝에서 발휘되는 것일까. 개혁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했다.

    물론 수십 년간 망가진 나라를 회복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보다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언제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민심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정도로 포퓰리즘의 폐단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국민이 깨달은 만큼 중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렇게 되길 기원한다. 한국으로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국가가 공고해진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고자 : 서유근 부에노스아이레스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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