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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벚꽃을 기다리는 마음

    김진영 연세대 교수·노어노문학

    발행일 : 2024.04.02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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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동산이 뭐란 말인가? 우선 만개한 꽃대궐을 그려보는 거다. 휘날리는 꽃비 맞으며 걷게 될 연분홍 주단을 상상해 보는 거다. 고작 일주일 남짓의 절정이지만, 숨 막히는 이 정경을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면, 견딜 수 있겠는가? 체호프의 마지막 희곡 이야기다.

    벚꽃동산을 대대로 소유해 온 귀족 집안이 있다. 영지를 담보로 빚을 내 살아온 터, 석 달 후면 경매에 넘어갈 텐데 아무 마련이 없다. 집안 농노였다가 자립한 청년 자본가는 방안을 제시한다. 영지를 별장지로 개발해 임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집을 철거하고, 오래된 벚나무를 베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못 한다. 백과사전에도 올라 있는 벚꽃동산,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름다운" 기억의 터전에 별장과 별장주라…. "실례지만, 너무 저속하다."

    결국 3막에서 벚꽃동산이 팔린다. 새 주인은 다름 아닌 농노 출신 청년 자본가. 얼마 전까지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노예였던 곳의 새 지주가 된 그는 흥분하여 소리친다. "다들 내가 도끼 들어 벚꽃동산 찍는 모습을 보라. 벚나무들 땅 위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라! 별장을 세울 것이다. 이제 우리의 손자와 증손자들이 새로운 삶을 보게 될 것이다."

    체호프 4대극 가운데 계층 전복은 '벚꽃동산'에서만 일어난다. 실은 체호프 자신이 농노 계급 출신이었다. 할아버지가 스스로 몸값을 치러 자유를 얻은 후, 그 아들은 잡화상을 운영하다 파산했고, 손자인 안톤 체호프는 의사로 성장해 글을 쓰며 온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그는 누구 편이었을까. 벚꽃동산의 옛 주인이었을까 새 주인이었을까?

    체호프 같은 작가에게는 유치한 질문이다. 그는 유능하고 충실한 자연과학도였다. 의사인 동시에 자기 자신이 20년간 결핵을 앓으며 죽어간 환자이기도 했다. 의사 일은 정확한 진단이지 완치가 아닐 것이다. 좋은 의사는 오래 관찰하고 경청할 뿐, 섣불리 단정하거나 투약하지 않는다. 실제로 체호프 극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신체보다 삶의 질병을 꿰뚫어 보는데, 삶의 질병이라는 것이 워낙 뻔하고 치유 불가능(또는 불필요)한 것인지라, 그들은 겉으로 무관심하며 냉소적이기 일쑤다. 이렇게들 말한다. "환갑 나이에 치료는 무슨?"('갈매기') "우리의 본업이 무엇인지는 하늘만이 알겠지."('바냐 삼촌') "어차피 마찬가지야!"('세 자매') '벚꽃동산'은 체호프의 4대극 중 유일하게, 의사가 나오지 않는다.

    훈련받은 의사 체호프에게 무대는 '삶'이라는 병증의 확대경이자 실험대다. 예술가의 의무는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는 것이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체호프는 답을 가르쳐주지도, 설교하지도, 선동하지도 않는다. 러시아 문학 전통에서 매우 예외적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또 이렇게 답했다. "그건 '당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거지. 당근은 당근이고, 그 이상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벚꽃동산'은 벚꽃동산이다. 쇠하고 흥하는 인생 역사의 순환로 어느 구간에 위치하는가, 어느 지점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벚꽃동산'의 메시지는 결정된다. 그것은 순전히 연출가와 배우와 관객 몫이며, 그들이 극으로 펼쳐진 삶을, 세상을 진찰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의 '벚꽃동산'('앵화원') 무대는 감상적으로 꾸며졌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작가 이태준은 3막까지만 보고 일어서 나갔다 한다. "애수, 그리고 가련한 고아를 보는 듯한 가엾은 희망, 그런 우울한 향가에 젖은 우리는 '낙랑'을 다녀 나와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고 수필 '여정(餘情)의 하루'에 씌어 있다. 한 아름다운 시대의 소멸 앞에서 쓸쓸해진 몇몇 관객이 추도식 하듯 다방에 앉아 있다 헤어졌다. 해방 후인 1946년, 좌익으로 전향한 이태준이 모스크바에서 재관람했을 때는 전혀 달랐다. '벚꽃동산'은 가벼운 유머를 담아 연출된 '새 시대, 새 세상'의 표본이었고, 소련 관객 틈에 섞여 4막 끝까지 감상한 이태준은 그날의 감흥을 "도취의 밤"으로 기록했다. 한때 '낙화의 적막'을 슬퍼하며 꽃 떨어질 자리까지 살펴주던 이태준이 이념의 급류에 휩쓸려 그토록 돌변했다.

    연극 '벚꽃동산'의 가장 큰 박수는 언제나 시대의 화석으로 늙어버린 충복에게 돌아간다. 맨 끝에 유령처럼 홀로 남아 마지막 대사를 읊는 인물이다. "이렇게 인생이 흘러가 버렸구나,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눕는다) 눕자…." 먼 곳 어디선가 줄 끊어지는 소리 들리다 잦아들고, 정적이 오고, 이어서 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 들린다. 체호프는 최후의 음향 효과까지 세심하게 지시했다. 벚꽃 기다리는 마음은 그 끝을 견뎌내기로 하는 용기다.
    기고자 : 김진영 연세대 교수·노어노문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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