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러 대사관 있는 정동길서 3년째 '평화 음악회' 여는 교수

    구아모 기자

    발행일 : 2024.04.01 / 사람 A18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배일환 이화여대 관현악과 교수

    지난 26일 낮 12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길 이화여고 앞. 이화여대 점퍼를 입은 배일환(59) 교수와 학생 3명이 첼로를 들고 길거리에 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오길 바랍니다." 시민들에게 인사한 배 교수와 학생들은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시작으로 첼로 4중주 연주를 시작했다.

    3년째에 접어든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는 지난 2022년 3월 21일 시작됐다. 그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이대 관현악과 배 교수가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시작했다. 러시아 대사관이 있는 정동길에서 대사관 직원과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취지였다. 음악회는 한여름과 한겨울을 제외하곤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열렸다. 매일 열리던 음악회가 작년부터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로 축소됐지만, 음악회는 계속되고 있다.

    배 교수가 음악회를 열게 된 건 우크라이나와의 개인적인 인연 때문도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한·우크라이나 수교 20주년을 맞아 문화 외교 사절로 키이우를 방문했다. 전쟁이 터지고, 뉴스에서 당시 자신이 공연했던 곳과 비슷한 우크라이나 음악당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배 교수는 "평화를 위해 제가 무얼 할 수 있는지 고민했고,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음악이라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할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수개월이면 전쟁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전쟁이 장기화할 줄 몰랐다. 가슴 아프다"고 했다.

    지난 2년간 배 교수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음악가가 협연에 나섰다. 대학 제자, 지인, 우크라이나인은 물론 러시아인도 함께 공연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연주자와 탈북자가 함께 공연한 적도 있었다. 러시아 연주자는 '러시아 대사관과 언론에 신상이 노출될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묻자 "푸틴 대통령이 있는 한 고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공연에 참여했다고 한다. 작년 5월 올레나 젤렌스카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이 방한했을 땐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연주회가 3년째 계속되자 "이런다고 전쟁이 끝나냐" "쇼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배 교수는 "이런다고 전쟁은 안 끝나는 게 맞는다"며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라도 무언가를 해야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점점 잊히는 것 같지만, 음악회를 함께 해주는 모두가 종전을 기원하고, 세계 평화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화를 위한 음악회 3년 차 공연은 30분간 계속됐다. 클래식 음악부터 팝송, 동요, 탱고는 물론 양희은의 '아침이슬'까지 다양한 곡이 연주됐다. 음악회는 헨델의 춤곡 '사라방드'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평화를 갈망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휴대전화로 공연을 찍던 시민들은 음악회가 끝나자 일제히 손뼉을 쳤다. 배 교수는 "음악회를 이어나가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지나가다가 저희의 음악 소리를 듣고 멈춰 서고 감동받은 시민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연주자로서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배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시작하게 됐지만, 시작한 이후로 예멘과 시리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더 커졌다"며 "세계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주회를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기고자 : 구아모 기자
    본문자수 : 172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