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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내한 공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피터 겔브 총감독 인터뷰

"정치가 위대한 예술을 파괴하거나 검열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를 침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로 한 자를 예술가가 지지한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1883년 개관한 세계 최고 오페라하우스(극장)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 피터 겔브 총감독은 지난 22일 맨해튼 링컨센터 내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때문에 모든 러시아 예술가를 무대에서 내쫓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를 (대놓고) 지지하는 예술가와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메트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메트 최고의 스타 소프라노이자 푸틴과 친분이 있는 안나 네트렙코를 모든 무대에서 하차시키자 일부 팬들이 '예술에 정치를 개입시키지 말라'며 반발했다. 네트렙코는 '불합리한 차별'이라며 지난해 메트와 겔브를 상대로 36만달러(약 4억8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는 4월 열려던 러시아 스타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이 자하로바와 푸틴의 친분 때문에 논란에 휩싸여 결국 취소됐다. 정치와 예술, 그리고 예술가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타당할까. 2006년부터 메트를 이끄는 겔브에게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손바닥만 한 자석을 조용히 건넸다. 거긴 이렇게 쓰여 있었다. '푸시킨이 아니라, 푸틴을 무력화하라.'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다.

―무슨 뜻입니까.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술가의 공연을 막거나 러시아 작곡가의 오페라를 제외한 적은 없습니다. 메트에는 지금도 마리야 바라코바, 옐레나 스티키나 같은 러시아 성악가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푸틴 때문에 (러시아) 예술가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푸틴 때문에 푸틴을 비난하는 것뿐입니다. 또 정치가 위대한 예술을 파괴하거나 검열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다만 푸틴의 노리개(pawn)나 도구(tool) 노릇을 하는 예술가는 예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의 위대한 예술가) 푸시킨이 아닌, 푸틴에게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트렙코가 거기 들어갑니까.

"네트렙코는 푸틴의 강력한 지지자이고 너무 밀접히 관련돼 있기 때문에 '떠나라'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일 작정을 하는 지도자를 지지하다니, 선을 넘었습니다. 메트는 상식을 벗어나는 예술가의 그런 인간관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네트렙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 국민은 푸틴을 비난할 수 없다' 같은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푸틴을 두둔했다. "기회가 있었다면 푸틴과 잠자리를 했을 텐데" 같은 말까지 하며 푸틴의 팬임을 자처했다. 메트 측이 발언을 철회하거나 우크라이나 자선 공연 무대 등에 서 달라고 부탁했을 땐 거절하는 등 친(親)푸틴 노선을 확실히 했다. 겔브는 한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네트렙코 해고에 대해 "군인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나는 내 자리에서 내 나름의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겔브는 한때 '돈 많은 어르신들의 취미 생활'로 여겼던 오페라를 젊고 역동적인, 살아 있는 장르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폐쇄적인 클래식계 밖의 인사들에게 감독이나 창작을 맡겼고 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극장을 찾아가서 보아야 한다고 여겼던 오페라를 온라인이나 극장에서 중계하는 등 일반 대중에게 오페라를 과감하게 개방했다. 리하르트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12~2013년 시즌에, 대작 '니벨룽의 반지' 연출을 '태양의 서커스'로 유명한 로베르 르파주에게 맡긴 파격을 실험한 사람도 겔브였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볼 것 많은 시대입니다. 오페라를 왜 봐야 할까요.

"오페라는 공연·시각 예술의 거의 모든 양상을 결합한 매우 독특한 방식을 통해 삶의 경험을 증폭한 것입니다. 오페라는 인류가 인지하지 못할지언정 사실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 즉 '삶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예술의 힘'을 선물합니다. 오페라는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예술입니다. 넷플릭스를 보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온종일 넷플릭스만 보는 행위는 비인간적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페라가 '인간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케스트라·성악가 등) 수백 명의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매우 드문 예술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오페라 가수들은 마이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노래합니다. 저는 오페라 가수들을 '성악 운동선수'라고 부릅니다. 온몸을 써서 거대한 공간을 소리로 채우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페라는 K팝과 정반대에 있는 셈입니다."

―AI(인공지능)가 작곡하는 시대입니다. 오페라도 만들 수 있을까요.

"관건은 AI가 '훌륭한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가'이겠지요. AI를 비롯한 모든 기술은 창의적인 이들 손에 그 기술이 들어갈 때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창의적인 사람이 AI로 다양한 실험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통제하고 적용하는 방법이 관건이었습니다. AI가 창의적으로 활용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가 (AI의 오페라 명곡 창작에) 변수라고 봅니다."

메트 개관과 함께 창단한 메트 오케스트라는 오는 6월 19~2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한다. 음악감독 야닉 네제 세갱이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과 벨러 버르토크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 등을 선보인다. 현역 최고 수준 메조소프라노 중 하나로 꼽히는 엘리나 가란차 등이 솔리스트로 나올 예정이다. 겔브는 "나도 이번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한한다. 한국의 오페라 팬층이 두껍다는 점을 잘 알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터 겔브

195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서 안내원을 하며 메트와 첫 인연을 맺었다.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1학기 만에 자퇴했다. 이후 공연 기획사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직원에 이어 임원까지 차근차근 올라갔고 1995년 클래식 음반사 '소니 클래시컬' 대표를 맡았다. 2006년 8월 세계 최고 오페라단으로 꼽히는 메트의 16대 총감독이 됐다. 그의 부친은 뉴욕타임스(NYT)에 45년간 재직하며 위상을 끌어올렸다고 이름난 아서 겔브(1924~2014) 전 NYT 편집국장이다. 기고자 :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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