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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GTC 2024' 행사에서는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키노트(기조연설) 말미에 깜짝 등장한 로봇 두 대 중 '그린'으로 불리는 한 대가 황 CEO의 부름을 완벽히 무시하는 오류를 냈다. 온·오프라인에서 수십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시연 실패는 아무리 순식간이어도 기업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실제로 지난해 2월 구글이 AI 챗봇 '바드'를 처음 공개하는 행사에서 바드가 엉뚱한 답변을 하는 오류를 내자, 이를 '시연 참사'라고까지 부르는 기사가 넘쳐났고 구글 주가는 8% 가깝게 급락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로봇 먹통 사태는 그 어디에서도 화제가 되지 않았다. 현장의 글로벌 미디어와 증권가 애널리스트 등이 모두 이례적으로 엔비디아에 관대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화를 나눠 본 현장 참가자들 사이에 확실한 공감대가 하나 있었다. "키노트를 2시간짜리 '원맨쇼'로 이끌어 간 황 CEO의 매력이 너무 큰 탓에 오류는 그 후광에 절로 가려지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황 CEO의 이미지는 기업 총수보다는 '록스타'에 더 가까웠다. 그가 팬덤을 양성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격의 없는 소통이다. 세계 20위 부호인 그는 글로벌 150명의 취재진과의 간담회에서는 "무대 위에서는 도통 그대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고선 대화가 되겠느냐"며 펄쩍 뛰어 기자들 사이로 걸어들어왔다. 그를 'AI 시대의 오펜하이머'로 비유하는 등 공격적인 질문의 답변을 회피하는 법도 없었다. 그러다 취재진 무리에서 엔비디아가 작은 회사였던 시절부터 연이 닿았던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스 기자를 발견하자, "내 오랜 친구(my old friend)"라며 자녀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장담컨대 그 기자는 평생 이 순간을 기억하고 황 CEO의 팬으로 남게 될 것이다.

황 CEO의 격의 없는 소통 철학이 홍보 분야에서만 무기가 되는 건 아니다. 사내에서는 더 빛을 발한다. 엔비디아 사옥에서 분기별로 한 번씩 열리는 황 CEO와의 대담에는 수백 명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하고, 끝장 토론을 하듯 송곳 질문들이 오간다고 한다. 직원의 불만과 궁금증이 가실 때까지 대화가 끝나는 법이 없는 이 대담은 길게는 4~5시간씩 이어진다. 황 CEO는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이 대담을 거르는 법이 없다. 한 엔비디아 엔지니어는 "(분기별 대담은) 대다수 직원이 회사에 대한 잡다한 불만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소통의 효용이 이 정도라면 우리가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국내 기업의 경직성은 오래전부터 기업 성장의 방해 요소로 지적돼 오지 않았던가. 관습과 문화의 제약을 넘어서는 '록스타'형 CEO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길 기대한다. 기고자 : 오로라 실리콘밸리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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