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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판권 사들여 아시아 무대 진출… 역발상 통했다

"몇 년 전까지도 '한국이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죠. 전 세계 극장이 '셧다운'됐던 코로나 시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공연을 계속 올렸다는 걸 세계가 알게 되며 분위기가 바뀌더군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죠."

2021년 초쯤이었다. 우피 골드버그 주연 원작 영화로 널리 알려진 '시스터 액트'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 400여 편의 지식재산권(IP)을 가진 미국 측 파트너사 MTI와 온라인 회의를 하던 김지원(50)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가 대담한 제안을 던졌다. "이제 '시스터 액트' 아시아 투어는 한국이 만들어도 되지 않겠어? 한번 판을 뒤집어 보는 게 어때?" 회의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 되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내로라하는 대형 제작사들도 1년에 두세 편이 최대치지만, EMK뮤지컬컴퍼니는 작년에만 대극장 뮤지컬 9편을 공연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8편을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뮤지컬 흥행 톱10 중 2위 '레베카', 3위 '베토벤', 10위 '벤허'가 모두 EMK 작품. 대본과 음악 등만 사와서 새로 창작하는 '스몰 라이선스' 뮤지컬들로 시작했지만, '엑스칼리버' '프리다' 등 순수 창작 뮤지컬도 꾸준히 제작하며 노하우를 쌓아왔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공연권을 사들여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투어 공연을 내보낸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자신감을 가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2017년 '시스터 액트' 월드투어팀의 내한 공연을 올렸어요. 훨씬 뛰어난 공연을 기대했는데, 비용을 낮춰 쉽게 짐을 싸고 풀며 이동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느낌이더군요." 그는 "우리가 만들면 훨씬 싸게 잘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 했다. 국내 뮤지컬 공연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 주로 호주 제작사가 꾸리는 아시아 투어 프로덕션은 우리 관객들의 한껏 고양된 눈높이에 맞추기엔 역부족인 경우도 늘고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럴 바엔 그냥 우리가 만들자!"

2023년 초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오디션 공고를 내자 2000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다. 시작은 호기로웠지만 진행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듯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브로드웨이만의 분위기와 요구 사항에 적응해야 했어요. 배우와 창작진 전원에게 'DIE(다양성·포용성·평등성)' 교육을 해달라는 배우, 심리상담사를 동행시켜달라는 배우도 있었고요. 캐스팅도 인종별로 다양하게 뽑아야 했죠."

부산과 서울 무대에 오른 한국 공연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이 사실. 하지만 서울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도쿄와 오사카의 2000석 규모 인터내셔널 투어 전문 극장 '시어터 오브'에서 7월 한 달 투어 공연을 요청한 것이다. "EMK가 만드는 다른 투어 공연도 일본에 올리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했죠. '뭘 하고 싶은지 얘기해. 그럼 내가 만들어 줄게!' 하하." 김 부대표는 일본에서 검증을 거친 뒤 상하이,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도시로도 갈 계획이다.

그동안 라이선스 수출도 활발했다.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109년 역사상 처음으로 EMK의 한국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 라이선스를 사들여 공연했고, 일본의 거대 미디어 기업 도호가 먼저 만든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 EMK가 들여와 고친 버전을 도호가 역수입해 공연하기도 했다.〈그래픽〉

김 부대표는 "아직 더 남았다.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뮤지컬 '프리다'의 전막 공연 쇼케이스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이제 직접 미국 시장을 두드려보려 합니다. 라틴계 인구가 많은 미국 서부 지역에서 멕시코 국민 화가 프리다 칼로 뮤지컬 '프리다'는 성공 가능성이 충분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픽] EMK 뮤지컬 해외 진출 일지 기고자 : 이태훈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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