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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 총리, 전인대 업무 보고

'동결, 동결, 동결.'

중국이 5일 양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전체 회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와 같은 '5% 안팎'으로 제시했다. 국방·재정 목표치도 작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중국이 경제난 속에 최소한의 체면을 차리는 목표는 설정했지만, 과도하게 돈을 풀거나 투자할 여유는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날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연례 회의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 보고를 발표하며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작년과 같은 5% 안팎으로 밝혔다. 톈안먼 사태의 여파가 작용했던 1991년(4.5%)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중국 외부에서는 '공격적인 목표'라고 평가한다. 부동산 거래·소비·생산·고용 등 경제 전반이 침체한 상황에 해외 경제 분석 기관들의 예상치인 4% 중반보다 훨씬 높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한 중국은 코로나 사태의 기저 효과로 2022년 성장률(3.0%)보다 높은 5.2%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경제가 더 둔화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5% 선을 고수한 것은 시진핑 정권이 성장률 목표치를 이보다 낮게 제시할 경우 사회·시장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장률 5%가 시진핑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방어선인 셈이다.

리창은 5% 안팎의 목표에 대해 "취업 증가 및 리스크(위험) 예방과 해소, 경제성장 잠재력과 이를 지지하는 조건 등을 고려해 설정했다"면서 "올해 중국 발전이 직면한 환경은 여전히 전략적 기회와 리스크가 병존하지만, 유리한 조건이 불리한 요소보다 우세하다"고 했다.

목표는 공격적인데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올해 중국 정부는 재정 적자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3.0%로 설정해 4조600억위안(약 750조원)의 적자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재정 적자 목표치는 작년과 같지만, 실제 지난해 재정 적자율인 3.8%를 고려하면 낮게 설정된 편이다. 국방비 예산도 작년과 같은 7.2% 증가율을 유지했다.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에 그쳐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속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는데, 올해도 물가 상승률을 작년 목표치와 같은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청년 실업과 관련해서는 "올해 1170만명이 넘는 대학 졸업생의 취업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의 뇌관인 부동산 문제에서도 획기적 대책은 없었다. 리창은 "우량한 대형 부동산 기업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예방·해결하고 자산 부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보장형 주택(저가형 서민 주택) 건설을 늘리겠다"고 했다. 업무 보고의 고정 문구였던 '집은 거주하는(住) 것이지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라는 문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라졌다. 부동산 부문 투자를 간접적으로 촉구한 것이다. 지방정부 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지방 채무 모니터링(감시) 체계를 완비해 지방 융자 플랫폼(토대)의 전환을 유형별로 추진할 것"이라며 "일괄식 부채 해결 방안을 한 차원 더 이행해 남은 채무 리스크를 적절히 해소하고 신규 채무 리스크를 엄격히 방지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산적한 경제 문제를 점진적·장기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무 보고에서 최우선 과제로 미국과의 경쟁을 위한 과학기술 혁신 기반의 생산력 증대를 뜻하는 '신(新)품질 생산력'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주요 신산업으로는 ICT(정보 통신 기술)에 기반해 전자 기기 등을 주변 사물과 연결하는 스마트 커넥티드(smart connected),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 첨단 수소 에너지, 신소재, 혁신 신약, 바이오 제조, 상업용 항공우주, 양자 기술 등이 언급됐다. 대외 관계에 대해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와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선도하고, 패권·패도(覇道)·괴롭힘에 반대한다"며 "인류 운명 공동체 구축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양회에서 드러난 중국의 태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경제 구조를 개혁해야 할 수준의 어려움에 봉착했는데도 원론적인 혁신만 외치며 대규모 부양책 카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양회(兩會)

중국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국정 자문 회의 격) 전체 대회를 뜻한다. 대표단 약 5000명이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여 국가 정책과 법안, 인사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일당 체제인 중국은 사실상 당이 전권을 쥐고 있지만, 명목상으로 전인대가 최고 국가 권력기관이다. 정협은 여론 동향을 전하고 정책 제안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인대 제도는 1954년, 정협 제도는 1949년에 확립됐다. 기고자 :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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