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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선도적 축구 철학을 견인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클린스만 축구는 뭘 지향하는지 모호했다. 초기부터 비판이 많았다. 축구의 역사는 여러 가지 철학이 새롭게 뜨고 지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왔다. 축구는 바둑과 비슷하다. 세력 바둑으로 갈지 실리 바둑으로 갈지, 이에 따라 포석도 수싸움 스타일도 달라진다. 고대부터 변화하지 않는 정석이 있지만, 유행하는 행마가 있고 또 그를 역으로 접근하는 발상도 등장한다. 축구 철학도 유사하다. 초기 11명 엔트리가 규칙으로 확정되고, 오프사이드 룰이 생겨나면서 맨투맨 수비를 기초로 하여 단순하던 게임에 포지션별 역할이 부여됐다. 포메이션 개념이 생기고 3백·4백 등 수비 전술 변화, 미드필더 역할 규정, 최근에는 사이드 백들이 공격에 활발히 가담하면서 이전의 틀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국가대표 축구 감독은 이런 현대 축구를 지배하는 축구 철학을 이해하고, 이를 한국적인 철학으로 정립해 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월드컵에서는 각국 대표팀이 고유한 축구 철학에 기초해 전략을 들고 나온다. 그냥 잘하는 선수들을 대충 모아서 나온 팀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대표팀 감독이 해석하고 적용한 축구 철학과 팀 색깔, 개성 있는 전략을 선수들에게 체화시켜 무대에 들고 나가야 한다.
둘째, 국가대표 감독은 전체 리그를 조망하고 인재를 발굴해 더 나은 스쿼드(팀)를 구성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26명 선수를 다 바꾸어 써도 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라면 모두 대상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이번 아시안컵 대표팀은 해외파 비중이 유독 높았다. 나머지는 국내 리그 울산·전북 등 유명 클럽 선수들로 채워졌다. 이는 클린스만이 무성의했을 뿐 아니라 K리그를 우습게 봤다는 방증이다. 매번 대표팀에는 당시 감독이 발탁한 '황태자'라 불리는 선수들이 있었다. 국내 축구를 잘 관찰해 발굴한 새로운 얼굴을 다양한 역할과 실험을 통해 성장시키고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조합 팀이 탄생하면서 한국 축구의 기대하지 않았던 미래가 만들어진다.
셋째, 문화를 확립하는 작업이다. 성공하는 모든 조직엔 특유의 문화가 있다. 명문 클럽팀은 면면히 내려오는 나름의 문화와 규범이 있다. 클럽팀도 감독이 바뀌면 문화와 내부 운영 방식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 새로운 감독과 함께하는 대표팀은 전체가 리셋되는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새 감독은 조직을 끌고 나갈 문화를 형성해내고, 규범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4년의 대표팀은 성장 배경과 현재 환경 자체가 다양한 선수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20대 초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의 선수들로 구성된다. 생각의 차이와 세대 간의 간극을 조율하고 균형점을 찾아내서 운용하는 리더의 적극적인 노력과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다. 궁극적인 평가 잣대이긴 하지만 표면적 결과 이상으로 과정과 이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적 성과 또한 중요하다. 세계적 트렌드를 파악, 현재 대한민국 축구의 최상위 선수들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철학으로 재정리하고, 선수를 면밀히 관찰, 실험하여 팀빌딩을 하고, 공격 전술, 수비 전술, 그리고 상대에 따른 변형들을 고려하여 선수 간의 조합과 포메이션을 구성하고, 국제 대회에 출전해서는 조별리그와 토너먼트, 그리고 상대팀의 특성을 반영한 게임 플랜을 마련하는 일이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다. 개별 매치에서는 주 전략과 대안 전략 등 게임 플랜이 충분히 준비되어 상황에 맞는 선수 교체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매 경기 많은 전문가와 팬이 선수 교체 의사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을 한 것은 이러한 준비가 없었던 것에 기인한다. 전문성 결여 혹은 태만의 결과이다. 기고자 :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인천유나이티드 사내이사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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