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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핫100 1위 비욘세

"여긴 텍사스가 아냐/홀덤도 아니라고/그러니 카드를 내려놓고/렉서스 자동차를 세워놓고/자동차 열쇠를 던져놓고/함께 있어줘/너와 함께 진득하게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어…."

밴조(banjo·기타 모양의 현악기)의 단출한 연주에 맞춰 빠르게 흥얼거리는 여성의 콧소리가 이어진다. 카우보이들이 실력을 겨루는 로데오경기장 배경에 어울릴 법한 노래다. 지난 2일 자 빌보드 싱글(핫100) 차트에서 진입 2주 만에 1위에 오른 팝스타 비욘세(43)의 신곡 '텍사스 홀덤'이다. 그래미상 최다 수상 기록(32회)을 갖고 있고, 직전까지 8곡을 핫100 1위에 올려놓았던 그에게 '빌보드 1위' 자체는 대단한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텍사스 홀덤'의 최근 흥행은 단순히 노래 한 곡의 성공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조명받고 있다. 흑인 여가수로 리듬 앤드 블루스, 솔, 힙합 등 전통적인 '흑인 음악'을 해왔던 그가 이례적으로 백인 가수들의 전유물이자 비주류 음악으로 치부되던 컨트리로 미국의 각종 음악 차트들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에서 솔로 가수로 독립한 뒤 흑인 래퍼로서 세계 래퍼계를 주름잡는 제이지(55)와 결혼한 비욘세는 연기자로도 성공하면서 음악·영상·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련된 흑인 문화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텍사스 홀덤'은 인기 포커 게임인 텍사스 홀덤을 매개로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상대방을 향해 "밀당은 그만하고 의사를 똑바로 밝히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내용의 노래다. 텍사스는 비욘세의 고향인 휴스턴이 있는 주(州)이자 미국 보수 진영의 심장부로 꼽힌다. 뮤직비디오에서 상반신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나온 비욘세는 손으로 서부 총잡이들이 총을 쏘는 몸동작을 하는 등 '컨트리 색채'를 짙게 드러냈다. 비욘세는 지난달 11일 프로풋볼 결승전 '수퍼볼' TV 광고로 신곡 출시 사실을 알렸다. 흑인 팝스타의 컨트리 신곡이라는 화제성이 곁들여진 데다 음악 자체에 대한 호평도 이어지면서 이 노래는 빛의 속도로 정상에 등극했다.

발매 첫 주 뒤 발표된 지난달 24일 자 빌보드 차트에서 컨트리만 따로 집계한 컨트리 차트에서는 백인이 아닌 여가수로는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한 주 뒤 핫100과 컨트리뿐 아니라 음원 다운로드, 음원 스트리밍, 글로벌 아티스트 등 차트까지 싹쓸이했다. 지난해 이례적으로 컨트리 음악이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는 등 컨트리 음악의 대세 흐름을 비욘세가 영리하게 읽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컨트리 음악은 백인의 전유물'이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허무는 데 비욘세가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몇 년간 흑인 컨트리 음악인들의 활약이 성과를 거둔 가운데 비욘세의 성공이 이어졌다"고 했다. 음악 비평 매체 '피치포크'는 이 노래의 도입부에 밴조 연주가 등장한 점을 두고 "(밴조는) 서아프리카에서 유래돼 흑인 노예들이 연주하던 악기로, 비욘세는 컨트리 음악의 뿌리를 이룬 흑인 문화에 대해 헌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노래가 화제가 되면서 훈훈한 장면도 펼쳐졌다. 컨트리의 대모로 꼽히는 백인 여가수 돌리 파튼(78)은 비욘세 노래가 빌보드 컨트리 차트 정상에 오르자 "나는 그의 '찐팬'(big fan)이다. 1등 축하한다"고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논란도 이어졌다. 미 남부 오클라호마의 라디오 방송 KYKC은 '텍사스 홀덤'을 틀어달라는 청취자 요청에 "우리는 컨트리 음악 방송이라 비욘세 노래는 틀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이 X(옛 트위터)에서 논란이 되자 방송국은 노래를 선곡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텍사스 홀덤'이 컨트리 음악의 저변을 더욱 넓혀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컨트리 뮤직 라디오 채널을 보유한 쿠물루스 미디어의 브라이언 필립스 최고콘텐츠책임자는 지난달 프로그램 담당자들에게 '텍사스 홀덤'을 주저하지 않고 방송하라고 하면서 "고정 청취자들 일부는 (이 노래를) 거부하고 있지만 신규 청취자들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고자 :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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