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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문신' 펴낸 소설가 윤흥길

"처음으로 독자에게 불친절하겠단 마음을 먹고 썼다.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문학적 경향과 다른 것을 고집스럽게 보여줄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다."

집필에서 탈고까지 걸린 25년, 5권 합해 2000쪽 넘는 분량. 장편소설 '문신'(문학동네)에 따라오는 거대한 숫자를 설명하기 위해 소설가 윤흥길(82·사진)은 '고집'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문신' 완간을 맞아 27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간담회. 작가는 고집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문학 작가 개인의 성향이 다르다면 백인백색의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세를 이루는 어떤 흐름이 한 나라의 문학 풍토를 석권하고 있다. 후배 작가들에게 '작품을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나는 이렇게 쓴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일부러 불친절을 떨었다."

소설 '문신'은 강제징용이 행해지던 일제강점기, 조선인 수탈에 앞장선 대지주 최명배 가족을 중심으로 시대의 비극을 겹쳐 보인다. 부모는 자식의 입신양명을 바라지만, 자식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에 맞선다. 한 집안과 민족의 균열을 조명하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지 않는 소설.

이야기는 문신처럼 새겨진 작가의 기억이 뒤섞이며 탄생했다. 하나는 열 살 무렵. "6·25 때 동네 형들이 입영 통지를 받으면 팔뚝이나 어깨에 문신을 새기는 걸 봤다. 훗날 부병자자(赴兵刺字)란 풍습임을 알게 됐다. 전쟁터에서 죽더라도 가족이 그 문신을 보고 시신을 고향에 묻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양대 명절이면 집 떠나 고향을 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귀소본능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큰 작품을 쓰라'는 고(故) 박경리 선생의 당부였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작품을 쓰라고 하셨다. 그렇게 대하소설을 시작했지만, 지금 분량상 그렇게 부를 순 없어 '중하소설'이란 신조어로 제 작품을 부르고 있다(웃음)."

전북 정읍 출신인 작가는 1968년 등단해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비롯한 작품에서 한민족의 과거를 조명해 왔다. "판소리의 율조를 따라 해, 토속 정서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하듯, 이번 소설에선 조사의 생략과 사투리로 빚어낸 리듬감이 두드러진다. 한국어란 언어의 풍부함을 보여주는 것 역시 소설의 미덕. "대화문엔 사투리를 많이 썼는데, 지문에 있는 말들은 모두 표준말이다. 낯설게 느껴진다면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심심하면 국어사전의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낱말을 외운다. 평생 사전을 끼고 살았다."

2018년 12월 세 권을 낸 이후 다음 해에 책을 완간하려 했지만, 건강 문제 등으로 5년 가까이 늦어졌다. "내 필생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노력했단 점에서 '필생의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이 제 끝이란 뜻은 아니다. 조선 시대 말을 배경으로 새로운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창작 욕구를 충족해야만 연명이 가능한 사람이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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