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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2023 올해의 영화 톱10 중 1위
'오키쿠와 세계' 감독 사카모토 준지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똥이 거름이 되고, 거름이 음식이 되고, 음식이 다시 똥이 되는 순환을 정갈하게 그린다. 첫 장면부터 변소에서 시작해 내내 똥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보고 나면 맑은 비가 씻어 내린 듯 마음이 깨끗해진다.

한국 개봉을 기념해 26일 내한한 사카모토 준지(66) 감독은 "팬데믹 시기,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위기감에서 영화가 시작됐다.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희망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치고 지난해 일본 영화 전문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BEST 10' 중 1위에 올랐다.

19세기 일본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도시의 분뇨를 수거해 농촌에 거름으로 파는 똥 장수 청년과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딸 오키쿠의 사랑을 그린다. 똥물을 뒤집어써도 더럽혀지지 않는 이들의 맑은 영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정화한다. 사카모토 감독은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직업을 가진 최하층민이지만, 그럼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좀처럼 꺾이지 않는 인물들"이라고 소개했다.

일반적인 1.85:1이나 2.35:1에 비해 좁은 화면비(1.33:1)에 흑백 영상으로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흘러가는 물이나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흑백 화면에 담긴 자연도 고즈넉함을 더한다. "흑백 영화는 색깔이 없어서 오히려 더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색채 정보가 없다 보니 관객이 인물의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자연 풍경도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지죠."

영화 '얼굴'(2000)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던 사카모토 감독은 한일 합작 영화 'KT'(2002)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루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사카모토 감독은 "한국에 올 때마다 봉준호, 김한민 등 한국 감독들과 만나 밥을 먹곤 한다. 일본보다 한국 후배 감독들과 훨씬 친한 것 같다"며 웃었다.

'오키쿠와 세계'는 일본의 베테랑 미술감독인 하라다 미쓰오가 기획한 '좋은 날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세계 각국의 자연과학자들과 함께 100년 후 지구에 남기고 싶은 좋은 날들을 영화에 담아보겠다는 취지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그린 만큼 의상과 세트, 소품도 전부 재활용품이었다. 부족한 예산 탓에 3년에 걸쳐 찍었지만, 실제 촬영 일수는 12일에 불과했다. 영화의 원칙은 '낭비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찍는다'였다. "70세 녹음기사를 비롯해 메인 스태프의 평균연령이 62세였어요. 다들 베테랑이라 단기간으로도 영화를 풍성하게 보이게끔 찍는 기술들이 있었죠."

"저쪽으로 가면 반드시 이쪽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 말하는 '세계'의 정의다. 사카모토 감독은 "아주 작은 동네의 이야기를 만들더라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번 영화 역시 '내일 이 세계가 끝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기고자 :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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