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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수 정년은 65세. 입을 닫으라는 법은 없어도 말을 줄이고, 거동이 불편하지도 않아도 학교를 떠나야 한다. 잠시 체류 중이던 미국 대학에서 80대 중반의 현역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종신교수'에 오르면,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연금·건강 등을 고려해 적정한 시기에 교단을 떠난다. 그렇다고 한국 교수들이 종신교수직을 부러워하는 건 아니다. 급격하게 바뀌는 세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학문이나 강의인들 어찌 시효(時效)가 없으랴.

'정년 적응력'이 뛰어난 우리나라 교수들. 요즘 65세는 대부분 건강 문제 없고 분야에 따라 학문적 성숙도가 정점에 가까워지며 인간적으로도 원만해지는 연령이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정년을 '쫓겨나는 나이'로 인식하지 않는다. 흡사 고별 연극 무대에서 내려가는 배우처럼 대부분 허허롭지만 개운한 표정들이다. 오히려 새로 펼쳐질 인생 2막에 기대를 크게 거는 듯한 그들이다.

교수들이 일생 펼쳐온 말과 행위는 무대 위에서의 그것들이니, 무대에서 내려온 뒤엔 그런 말과 행위들을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 무대를 내려온 교수들은 원래의 말을 잊(잃)어버린 채 새로운 배역 뒤로 모습을 감춘다. 간혹 빗나간 정치 집단의 도구가 되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쉬운 행보를 보이는 정년퇴임 교수도 없진 않다. 그러나 새로운 직업, 사회봉사, 취미활동 등 무슨 일을 해도 그들 대부분은 은자(隱者)다. 연구와 강의에 두각을 나타내던 교수들, 이슈 메이킹 혹은 파이팅에 앞장서던 현실참여 교수들, 그들 모두에게 정년은 은둔의 시작이다.

북송의 역사가 범조우(范祖禹)는 '자신의 은둔을 고상하다고 여기므로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은자'라 말했지만, 교수의 정년은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돌아올 수 없는 은둔의 출발점이다. 이달 말에도 많은 '베이비 부머' 교수가 정년을 맞는다. 그간 무대 위에서 착용하던 가면은 장롱에 넣어 두고, 의미 있는 은둔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품격을 높여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고자 :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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