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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서 미국으로 인도

가상 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으로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됐다. 권씨는 국외 도피를 하다가 동유럽 국가인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는데 현지 법원이 권씨를 미국으로 보내는 '범죄인 인도(引渡)'를 결정한 것이다. 앞서 미국 검찰은 권씨를 증권 사기,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해뒀다.

22일 몬테네그로 언론 포베다 등 외신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고등법원은 "권씨가 금융 영업 분야에서 저지른 범죄 혐의로 그를 기소한 미국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지난 21일(현지 시각) 밝혔다.

권씨는 지난 2022년 5월 폭락한 가상 자산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다. 당시 테라·루나 폭락으로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이 50조원 이상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 권씨가 테라·루나 폭락 직전인 2022년 4월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이미 나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후 권씨는 아랍에미리트, 세르비아 등으로 도피했다가 작년 3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체포됐다. 두바이로 가려고 위조 여권을 냈다가 붙잡힌 것이다.

앞서 한국과 미국 당국이 권씨를 추적하고 있었다. 한국 검찰은 지난 2022년 9월 권씨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배임 등 혐의를 적용한 체포 영장을 법원에서 받아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작년 2월 "권씨가 수백억달러 규모의 증권 사기를 저질렀다"면서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한 달 뒤 미국 뉴욕 검찰도 권씨를 증권 사기,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또 한국과 미국은 모두 권씨가 작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되자 바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권씨는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가 되면 뉴욕 연방법원에서 재판받게 될 전망이다. 연방법원은 첫 재판을 다음 달 25일로 잡아둔 상태다. 권씨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는데 형기가 다음 달 22일 종료된다.

미국 변호사 자격이 있는 한 법조인은 "권씨가 한국보다 미국에서 훨씬 높은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혐의가 모두 유죄가 돼도 가장 무거운 형을 기준으로 가중(加重)하는 방식으로 전체 형량을 정한다. 경제 범죄에 대해서는 징역 40년을 넘긴 적이 없다.

반면 미국은 혐의별로 선고된 형을 단순 합산한다. 100년 이상 징역을 선고받는 경우도 나온다. 사상 최대 수준인 640억달러 규모 '폰지 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지난 2009년 연방법원에서 징역 150년을 선고받았다. 또 가상 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작년 11월 배심원 재판에서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는데 3월 선고에서 최장 115년 형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편 권씨가 몬테네그로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결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022년 11월과 12월에 고등법원이 범죄인 인도 결정을 각각 내렸는데 이에 대해 권씨가 모두 항소했지만 인도 결정은 유지됐다. 지난 8일 항소법원은 권씨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 "권씨를 어느 나라로 보낼 것인지도 결정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고등법원이 권씨를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했는데 권씨가 또 항소를 하더라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그동안 몬테네그로 당국은 권씨를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작년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 정책 파트너"라며 "가능한 한 빨리 양국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과 몬테네그로 간에는 '범죄인 인도 협약'이 맺어져 있지 않다. 다만 몬테네그로 국내법인 '형사 사건 국제법적 지원에 대한 법률'에 따라 미국에 범죄인을 인도한 과거 사례는 있다.

한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비회원국들이 맺은 다자(多者) 조약인 '범죄인 인도에 관한 유럽협약'에 가입돼 있어 몬테네그로에서 범죄인을 인도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법원은 권씨에 대해 미국이 낸 범죄인 인도 요청을 승인하면서 한국의 요청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픽] 권도형 도피 22개월 만에 미국 인도 결정 / 미국 검찰이 권도형에게 적용한 주요 혐의 기고자 :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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