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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2년
전장의 주민들 인터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4일 2년을 맞는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큰 전면전이다. 러시아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미국·유럽 등 자유진영의 대결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전쟁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국제사회에선 지금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은 그대로 두되 전투를 멈춰 희생자를 줄이자는 휴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면전 발발 2년을 앞두고, 때때로 미사일이 날아드는 전쟁의 나날을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원격으로 인터뷰했다. "아름다운 저의 고향 아우디이우카는 이제 '죽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한) 2014년에 아우디이우카도 잠시 점령했다 떠났고, 10년이 지나 다시 돌아왔습니다. 러시아가 말하는 '휴전'은 '다음 공격이 있을 때까지 잠시 멈춘다'라는 얘기일 뿐 입니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거짓에 속게 될 겁니다." 문화 기획자로 일하다 키이우로 피란해 살고 있는 예브히나 바실리예바씨가 떠나온 고향 아우디이우카는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격전지다.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은 70년 넘게 한반도를 분단하고 있는 한국의 '휴전선' 같은 상황 또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6·25 전쟁 발발 이후 1년 만에 휴전협정을 시작했지만, 이후 2년여간 강대국들의 줄다리기 사이에 결국 분단이란 비극을 맞은 한국의 선례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키이우 거주 나탈리야 부티르스카씨)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2년 전만 해도 키이우에 미사일이 날아든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전쟁은 어느새 다가와 있더군요." 저널리즘 NGO인 공익저널리즘랩(PIJL) 대표 나탈리야 구메니억씨는 한국 또한 전쟁을 남의 이야기로 여기지 말고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전쟁 장기화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한국과 같은 분단국이 돼 무력 도발의 공포 가운데 살고 피란민이 결국 실향민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우려했다. 우크라이나에서 2년째 전쟁을 버티고 있는, 여덟 명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전한다.

수도 키이우의 직장인 안나(32·가명)

"'살아남는다.' 지난 2년간 키이우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과연 아침에 내가 살아서 깨어날 수 있을지, 내게 내일이 있을지를 걱정하면서 살았어요. 올해 첫날, 우리 아파트에 러시아 미사일이 떨어져 죽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낮밤을 죽음의 공포 속에 살면서 모두들 몸과 마음이 아픕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힘이 들고, 극심한 기분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 전쟁 역시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그 후에도 갈등이 계속되고 한국처럼 분단된 나라가 될까 두렵습니다. 평화와 안보를 이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준 모든 이와 각국 정부에 정말로 감사합니다."

격전지 아우디이우카 출신 예브히나 바실리예바(28)

"전쟁 발발 다음 날 고향을 떠났습니다. 10년 전 아우디이우카가 점령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되도록 빨리 (피란) 열차에 올랐습니다. 지난 2년간 매일 도시가 전투로 파괴되어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아우디이우카는 지대가 높아 방어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격해오는) 러시아군이 많이 죽어가고 '러시아 군인들의 거대한 공동묘지'라고도 불리게 됐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침탈한 이후 단 한 번도 평화를 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들 막심(16)과 키이우로 피란한 도네츠크 출신 올가 이블리에우(43)

"저는 도네츠크 출신입니다. 2년 전 그날, 막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로켓이 아파트에 떨어졌습니다. 지하 대피소로 가려 했지만 계단이 무너져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죽는 줄 알고 아들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자정쯤, 대형 사다리차가 와 붕괴 직전 아파트에서 우리를 꺼내줬습니다. 러시아가 내 보금자리를 파괴한 것은 벌써 두 번째입니다. 2014년 내전을 피해 몸만 겨우 빠져나와 (약 40㎞ 떨어진) 우크라이나 지역 토레츠크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절 내버려두지 않았고, 또다시 소중한 집과 일자리를 빼앗았습니다. 내 소망은 오직 하나, 자유로운 내 고향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방에서 활동 중인 로니(42·가명)

"전쟁 직후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남편은 우크라이나 르비우에, 어머니와 여동생, 아이 둘(아들과 딸)은 폴란드로 보냈습니다. 지난 2년간의 삶은 끝없는 마라톤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매 순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보이지 않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습니다. 내 유일한 희망은 아들(14세)이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는 겁니다. 평화 협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휴전 협상이 성과를 거두려면, 러시아가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낄 만큼 코너에 몰려야 합니다."

나탈리야 부티르스카(46) 아시아태평양 전문 연구원

"이 전쟁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가져가며 (서방은) 분쟁이 끝난 줄 알았지만 러시아는 당연한 듯이 우리를 또 침공했습니다. 푸틴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에 일부 점령지는 넘겨주는 조건으로 휴전이 이뤄져도 이는 푸틴의 계획에 힘을 실어줄 뿐, 결코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점령지를 양보하고 휴전을 한들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분단을 겪은 한국인들이 누구보다 너무나 잘 알 겁니다."

방송기자 안드리 코발스키(43)

"저는 지난해 12월 22일 밤, 러시아의 키이우 공습으로 살던 아파트가 무너져 피란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휴전이 절실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휴전 합의는 휴지 조각에 불과할 겁니다. 러시아는 무엇이든 약속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를 이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러시아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압도적인 무력뿐입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민주적 선(善)'과 '독재적 악(惡)' 중 하나가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결말일 겁니다.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저지르는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의 휴전은 재앙으로 이어질 겁니다."

프리랜서 언론인 비탈리(50)

"이 사태는 진작에 끝날 수 있었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단 점령했을 때 미국과 유럽이 개입했다면 말이죠. 하지만 서방의 무관심으로 돈바스 내전,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으로 시작된 대결 국면은 러시아와 유럽 전체로 확산할 겁니다. 러시아가 유럽연합(EU)·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충돌하는 전쟁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휴전을 권하는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러시아의 진짜 의도를 애써 못 본 척하며, '평화'를 부르짖는 것을 중단해 주십시오."

나탈리야 구메니억 공익저널리즘랩(PIJL) 대표

"2년 전 누군가가 '키이우에 초음속 미사일이 떨어진다'고 말했다면 당시엔 그것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일상입니다. 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정말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휴전과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한을 비롯, 다른 나라들에서 더 많은 무기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더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고요. 이런 와중에 거론되는 휴전 논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라도 앉으려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해야 합니다."

[그래픽] 우크라이나·러시아 전황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김동현 기자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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