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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한국에 온 폼페이 유물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발행일 : 2024.02.05 / 특집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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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마다 창문 대신 벽화… 포도주神·비너스 조각상도 화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서기 79년의 어느 날,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폼페이가 순식간에 화산재에 뒤덮였습니다. 인근 화산 '베수비오산'이 분화하면서 나온 것이죠. 폼페이 시민들은 베수비오산이 분화가 잦은 활화산이라는 점을 염려하긴 했지만, 화산재가 자신들 사는 곳까지 덮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호화로운 휴양도시로, 인구가 약 1만5000명에 달하는 큰 도시였어요. 야외극장, 원형경기장, 체력 단련장, 공공 목욕탕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죠. 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하룻밤 사이에 두께 5m가 넘는 화산재 아래에 파묻혀 버렸어요. 이후 폼페이는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로 방치됐습니다. 사람들 기억에서도 차차 잊히고 말았습니다.

    폼페이 유적이 학자들에게 발굴된 것은 그로부터 1700년쯤이 흐른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어요. 놀랍게도 폼페이는 마치 타임캡슐 안에 든 것처럼 시간이 멈춘 모습이었죠. 발굴을 계기로 고대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되살아났어요. 18세기 말~19세기 초에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 복고풍인 신고전주의가 유행하기도 했답니다.

    오늘날 폼페이 유적지는 유네스코에서 보호하는 세계유산입니다. 그리고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물 중 다수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그중 127점을 5월 6일까지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는 '폼페이 유물전'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예요. 그럼 전시된 작품을 몇 점 살펴볼까요?

    창문을 대신한 벽화

    폼페이는 도시 전체를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어요. 그리고 성벽 안쪽엔 광장을 중심으로 잘 포장된 도로들이 쭉 뻗어 있었어요. 도로를 따라서 저택들이 질서 있게 배치됐죠.

    특이하게도 저택은 출입구를 제외하고 모든 벽이 막혀 있었습니다. 대신 직사각형의 넓은 실내 위로 천장이 뻥 뚫려 있어서 위쪽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공기도 순환했습니다. 이런 건축 공간을 '아트리움(atrium)'이라고 해요. 벽에는 창문을 뚫는 대신 다양한 벽화를 그렸어요. 당시 벽을 다 지으면 표면에 석회를 발라 매끄럽게 보이도록 했는데요, 이때 석회 바탕이 마르기 전에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fresco)' 방식이었어요.

    <작품1>을 보세요. 원래는 벽에 창이 없는데, 마치 창틀이 있고 그 너머로 주변에 세워진 다른 건물들이 보이는 것처럼 그렸어요. 가까이 있는 건물은 짙게, 멀리 있는 건물은 흐릿하게 표현해서 실제 창문 밖으로 풍경이 펼쳐져 있는 듯한 눈속임 효과를 냈지요.

    연회를 열어 집주인의 교양을 과시

    저택 주인들은 음식을 차려 놓고 음악과 공연, 놀이를 준비해 지인을 초대하곤 했어요. 이를 연회라고 해요. 당시 연회는 사교의 목적뿐 아니라 집주인의 교양과 예술 취향을 한껏 과시하는 기회였어요.

    저택 안팎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와 '디오니소스' 조각상을 세우거나 벽화로 그리곤 했어요. 아프로디테(로마 이름은 비너스)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이고, 디오니소스(로마 이름은 바쿠스)는 축제와 연극의 신이었죠. 이들 신을 통해 폼페이의 연회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죠. 폼페이의 연회는 아름답고 오감을 즐겁게 했으며 흥취가 넘쳤으니까요.

    <작품2>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대리석 조각상이에요. 신화에 의하면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해 바람에 의해 해안가로 밀려와 처음 우아한 모습을 드러냈어요. 이 작품에서 옷자락이 물에 젖은 것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그녀가 방금 바다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프로디테는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몸과 얼굴을 갖고 있으며 사랑을 전파하고 수호하는 역할을 해요. 연인이나 배우자를 구하는 남녀는 아프로디테에게 소원을 빌었고, 신부나 신랑을 얻은 남녀는 감사의 선물을 바치기도 했답니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에게 포도주를 선물한 신인데요, 옛 로마인들은 물에 포도주 원액을 섞어 마셨다고 해요. 포도주의 비율이 진하면 술로 취급하고, 물을 많이 타면 일반 음료로 여겼어요. <작품3>의 종처럼 생긴 도기는 커다랗고 입구가 넓어서 포도주와 물을 섞는 데 사용했던 '크라테르'라고 불리는 그릇이에요. 보통은 연회실 한가운데 눈에 띄게 놓아두었다고 해요. 이 크라테르의 표면에는 소파에 편안하게 기댄 인물 세 명과 서 있는 인물 한 명이 보이는데, 연회를 즐기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연회실에 들어가기 전 거치는 전실에서는 <작품4>와 같이 연극과 관련된 벽화를 볼 수 있었어요. 연회 중에는 연극 공연이 열리기도 했어요. 벽화를 무대 배경 삼아 공연하기도 했던 거죠. 벽화 양쪽에 기둥 두 개가 그려져 있어서 무대 같은 느낌을 줘요. 그 가운데 계단 위에 가면이 하나 놓여 있네요. 가면은 배우들이 연기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장자리에는 식물과 과일 장식이 둘러져 있네요. 그 사이사이 걸린 것은 아마도 연극에 쓰이는 소품 같습니다.

    음악·미술·춤·연극… 예술의 보고, 폼페이

    이렇듯 폼페이 사람들은 음식과 더불어 음악, 미술, 춤, 연극까지 총동원해 풍요로운 예술의 잔치를 열며 살았던 것으로 보여요. 과거에는 폼페이가 유흥과 쾌락으로 타락한 도시라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어요. 오늘날에는 풍성한 문화예술의 보물 창고로서의 폼페이의 모습이 새롭게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기고자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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