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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중독의 역사

    곽아람 기자

    발행일 : 2024.02.03 / Books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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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 에릭 피셔 지음조행복 옮김|열린책들512쪽|3만원

    "나는 거의 매일 밤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간까지 밖에 있거나 아니면 집에서 선녹색의 작은 병에 담긴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뼈저리게 후회가 밀려왔고, 다시 제자리를 찾으려고 절실한 마음으로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미국 컬럼비아대 임상정신의학과 조교수이자 중독 전문 의사인 저자 칼 에릭 피셔(43)는 대학을 졸업한 첫해 서울에 있었다. 장학금을 받고 한국의 신경과학연구소에 특별연구원 자격으로 있었지만 연구도, 한국어 공부도 뒷전이었다. 나태해서만은 아니었다.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지에 중독돼 있었다. 술,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손에 소주병을 들고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한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보스턴글로브가 '2022년 최고의 책'으로 꼽은 이 논픽션에서 저자는 두 가지 시선으로 '중독'을 파헤친다. 하나는 의사의 시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알코올중독자 부모 밑에서 자란 중독자의 시선이다. '회복 중인 중독자'로서 저자의 경험이 건조한 의학·역사 지식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고,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중독을 온정적으로 바라봐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이 책의 맹점이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미국 사회의 중독사(史)'에 할애돼 있지만 중독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담겨 있어 미국에 관심이 없더라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왜 사람은 알면서 옳은 길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가는가?"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의문이 책의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욕정을 이기지 못해 죄를 거듭 지은 사실을 털어놓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일컬어 "중독을 언급한 최초의 회고록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섹스 중독 회복 프로그램인 '섹스와 사랑 중독자 익명 모임'이 '어거스틴 펠로십(Augustine-Fellowship)'으로도 알려진 것은 그 때문이다. '고백록'을 읽고 있던 이 모임의 어떤 회원은 주장했다. "그(아우구스티누스)는 명백히 우리와 같다."

    중독을 의지가 미약해 생긴 결과물로 바라보는 것이 사회 통념이지만 저자는 "'addiction(중독)'은 의지를 무너뜨린 힘이 아니다. 누가 선택한 것이다"라 말한다. 'addict'의 어원인 고전 라틴어 '아디케레(addicere)'는 '누구에게 양도된'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자신의 행위능력을 버리는 능동적인 과정, 즉 선택을 포기하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도파민이 두뇌의 쾌락 중추를 지배해 중독에 관여한다는 가설에 대해서도 "과장되었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선 술과 여타 약물, 소셜미디어 알림, 모닝커피 한 모금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까지 두뇌의 도파민 분비 때문으로 여겨지지만 저자는 "도파민은 쾌락 분자가 아니다. 도파민은 향유, 즉 '즐기기(liking)'가 아니라 욕망, 즉 '바라기(wanting)'의 느낌과 더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독이 어떻게 '질병'으로 인정되었는지를 풀어내는 부분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중독을 처음으로 '질병'으로 지칭한 사람은 '미국 정신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8세기 의사 존 러시. 이후 중독이 의학적으로 치료 가능하다는 개념이 싹텄다. 이는 나아가 알코올중독을 비롯한 여러 중독이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숙고될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독의 의학적 치료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 긍정적 작용만을 한 건 아니었다. 저자는 "치료적 접근법은 약물 치료를 확산시켜 제약 회사만 배불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독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저자는 "중독도 하나의 '스펙트럼'"이라고 말한다. "모든 정신 질환에서 병자와 나머지 인간을 구분하는 자연스러운 지점은 없으며, 정신 질환의 원인은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중독을 인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중독자의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알코올중독으로 재활 시설에 있었던 저자의 경험, 저자가 중독자이지만 의사라는 점이 가지는 호소력, 유려한 글솜씨와 풍성한 배경지식 등이 어울려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의문은 남는다. 어디까지가 팩트이며, 어디까지가 중독자의 자기변명인가. 원제 The Urge: Our History of Ad diction.
    기고자 :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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