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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가 만난 사람] 2021 부커상 후보 벵하민 라바투트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4.02.03 / Books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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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는 절대 알 수 없는 감정
    인간은 '즐거움' 느끼는 존재

    ◆매니악 | 벵하민 라바투트 소설 |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412쪽 | 1만8000원

    광기로 가득 찬 세상은 놀랍지 않다. 기술이 인간성을 좀먹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딥페이크(deepfake·AI가 만든 가짜 콘텐츠) 음란 사진이 불을 지폈듯, 기술 발전에 따른 논란은 앞으로 거세질 테다. 비관적 전망을 앞둔 시점에서, 소설 '매니악'은 우리의 시야를 과거로 돌려 묻는다. 인간의 이성(理性)에 광기의 그림자가 드리우진 않았나.

    '매니악'은 과학이 지닌 기적과 광기의 색채를 동시에 담은 소설. 양자역학·컴퓨터·AI 등 기술을 발전시킨 과학자들이 이성의 한계에 다다르는 과정을 좇으며, 개인과 시대에 스며드는 광기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3년, 시대와 과학의 암울한 전망에 좌절한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의 자살로 시작한다. 컴퓨터 '매니악'을 만든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미국의 군사적 목적과 함께하며 '변절한 수학자'가 되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에 있다. 이성의 타락을 경계하며, 인간으로서 학문과 예술의 아름다움이 지닌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네덜란드 태생의 벵하민 라바투트(44·작은 사진)는 과학적 발견의 명암을 다룬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로 2021년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작가. 신작은 '우리가…'처럼 실제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상상을 보탠 소설이지만, 2차 세계대전·냉전 등 시대적 배경이 풍기는 음울한 분위기가 한층 짙어졌다. 과학사의 변곡점에 있던 이들의 삶과 생각을 긴장감 있게 엮어내, 한 편의 영화처럼 읽힌다. 칠레에서 지내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사실에 기반해 소설을 쓰는 이유는.

    "내 모든 작품은 소설이다. 사실과 밀접하지만 소설로 읽혀야만 한다. 나는 믿음을 거스르는 세상의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중 많은 것은 학술 논문이나 오래된 편지에서 발견된다. 진리와 아름다움은 잊힌 것, 남겨진 것, 숨겨진 것 속에 숨어 있다."

    ―100여 년 동안 과학기술의 진보를 다루지만, 전기(傳記)와는 거리가 멀다.

    "과학적 진보는 메마르고 죽은 이야기다. 그것에 대한 책은 절대 쓰지 않을 거다. 존 폰 노이만이란 매우 독특한 인간의 정신에 주목했다. 그가 광적인 야망으로 20세기 과학의 핵심 분야를 많이 건드렸기 때문이다."

    ―파울 에렌페스트는 '정신 나간 이성, 과학의 영혼을 따라다니는 유령'이 '신과 같은 통제력을 주겠다는 속삭임으로 똑똑한 사람들을 꾀어'낸다고 말한다. 그 유령은 지금도 있나.

    "파울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유령은) 더 이상 속삭이지 않는다. 이제는 울부짖는다. 그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을 거다. 미래에서 우리를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다."

    ―지성(知性)의 몰락이 새로운 지성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이성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지적하고, 이성이 우리를 어떻게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광기와 어리석음에서만 발견되는 명료함에 대해서도 쓰고자 했다."

    ―최근 테일러 스위프트 딥페이크 논란이 있었다. AI와 관련된 논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유머, 공포, 불신, 절망, 냉소로 대응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동원해서. 우리가 모순과 감정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내면의 크기를 가늠하게 해준다. 우리 모두의 내면은 광활하다. 비록 한 사람 한 사람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말이다."

    ―저작권을 비롯한 AI 관련 논쟁은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 구도로 상정된다.

    "우리는 중대한 변화 앞에 서 있다. 논쟁은 적절한 사고방식이 아니다. 논쟁은 제쳐두고(기꺼이 논쟁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맡겨두고), 깊게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밥을 먹고, 춤을 추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개를 쓰다듬고, 사랑을 나누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곱씹어야 한다. 인간의 일은 AI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다."

    소설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끝난다. 현대 과학의 원류를 살피다가 배경이 상당히 최근으로 넘어오면서, 일부 독자는 긴장감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계가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에 인간의 미래가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곱씹기엔 충분하다. 이세돌은 알파고에 패배한 뒤 "즐거움이 곧 바둑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선 "어린아이처럼 놀 줄 알아야 한다"는 노이만의 생각과 이어진다.

    ―기계와 AI가 발전할 미래에 인류의 희망은 있나.

    "인간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외계 지성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당연히 그들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 그들보다 더 사악하고, 굶주린 생명체가 우리다. 이세돌의 패배는 인간의 패배지만,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위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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