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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에 4쇄까지… 감성詩로 2030 마음 훔친 젊은 시인들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3.12.07 / 문화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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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 시인 데뷔 시집 돌풍

    시인의 첫 시집이 잔잔한 문학계에 돌을 던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2020년 등단한 임유영(37)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오믈렛'(문학동네)은 지난 10월 말 출간 당일 초판 1500부가 모두 팔렸다. 곧바로 중쇄에 들어가 1달여 만에 4쇄(4500부)를 찍었다. 신인의 데뷔작으론 이례적 성공이었다. 팬덤이 있어 초판을 5000부 이상 찍는 일부 시인도 있지만, 시집은 초판 발행 부수인 1500~2000부를 소진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신인의 데뷔작이 단기간에 쇄를 거듭하며 널리 읽히자, 일부 문학 출판사에선 "신인 시인의 시집이 더 잘 나간다"는 말이 나온다.

    문학동네 시인선이 돌풍의 중심에 있다. 지난 10월 시인선 200호 출간을 맞은 뒤로 본격 신인 발굴에 나섰다. 201호부터 올해 마지막 출간을 앞둔 206호 시집에서 다섯 개를 신인의 데뷔작으로 삼았다. 그중 201호(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202호(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203호(임유영 '오믈렛') 모두 출간 후 1달 안에 중쇄를 찍었다. 문학동네 편집국 강윤정 부장은 "다채로운 데뷔작을 잇따라 내면, 독자가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시인이 누구일지 한번 더 새롭게 봐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최근 주목받는 신인들의 키워드는 젊은 세대와의 '동시대성'에 있다. 고선경(26) 시인은 첫 시집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 세대의 일상을 그린다. 그럼에도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시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중에서)고 눙치며 유머의 힘을 잃지 않는다. 시의 엄숙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독자에게 한발 다가가려는 '친절함'도 엿볼 수 있다. 임유영 시인은 첫 시집에 방과후 문예반 소녀, 밤에 나간 산책 등 있을 법한 장면부터 죽음에 대한 것까지 다채로운 시편을 담았다. 임 시인은 "최대한 그간의 제 경험을 배제하고 보편적인 경험을 이용하면서도, 감정과 가치에 솔직하고 진솔하게 쓰고자 했다"고 했다.

    박상수 문학평론가는 "시집의 주된 독자층이 20~30대 여성으로 좁아지면서, 이들이 자신 세대의 이야기와 감수성을 담아낸 젊은 시인들을 선호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시의 한 문장만으로도 문학적 감성과 취향을 건드릴 수 있기에 젊은 세대의 콘텐츠 소비 특성과도 잘 부합한다"라고 했다.

    신인 시인을 띄우려는 출판사들의 마케팅도 다변화되고 있다. 올 초 출간돼 두 달여 만에 3쇄(3500부)를 찍은 유수연(29) 시인의 데뷔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의 표지에는 하얀 눈송이가 가득 그려져 있다. 창비가 2020년부터 정형화된 기존 시인선의 디자인과 다르게, 데뷔작 초판 1쇄에 한해 특별 제작해 씌우는 커버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바라보며 '슬픔을 가두는 건 사람의 일이었고/ 사람을 겹겹이 쌓는 건 사랑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차갑고 동시에 따뜻한 시집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젊은 시인들은 시작(詩作) 외의 활동을 자제했던 과거와 달리, 시집 출간 이후 홍보에 있어서도 더욱 적극적이다. 최백규(31) 시인은 작년 데뷔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창비)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김훈 소설 '하얼빈'과 함께 알라딘 투표에서 '2022 한국문학의 얼굴들'로 선정됐다.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에서 시인의 인지도가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풀이된다.

    신인 시인과 출판계의 최근 움직임이 시집을 일종의 '상품'으로 소비하도록 이끄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하는 감각에 맞추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올해 데뷔작 '내 사랑을 시작한다'(문학과지성사)를 내놓은 이린아(35) 시인은 뮤지컬 배우 겸 재즈 보컬리스트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경험을 시 '여름 공연'에서 이렇게 푼다. '우리는 불가능을 담보로 공연을 계획했다.// 무대는 벌판이어도 좋고 지평선이어도, 간이 정류장 또는 당근밭이어도 좋았다. (중략) 빈 의자가 있는 데면 어디라도 좋았다.' 신인들에게 마련될 '빈 의자'는 곧 독자에게 주어질 또 하나의 상상력일 테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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