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태평로] 이재명 대표가 재판을 우습게 보는 이유

    최원규 논설위원

    발행일 : 2023.11.29 / 여론/독자 A39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웬만한 사람도 법정에선 주눅 들기 마련이다. 유·무죄가 갈리는 형사 법정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듯하다. 재판에 지각하고, 법정에서 가끔 하품도 한다. 단식 직후 열린 대장동 사건 첫 재판 때는 "앉아 있기도 힘들다"며 재판을 일찍 끝내고는 국회로 가 표결에 참여했다.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선 국정감사 때문에 불출석한다고 해놓고 국감장엔 가지도 않았다. 재판부를 농락한 것이다. 보통의 피고인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근저엔 거대 야당 대표라는 특권 의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들도 이러지는 않았다.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이 대표가 지금 자기 재판을 맡고 있는 재판부 판사들이 1심 선고를 못 하고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부터 보자. 지난 대선 때 이 대표가 대장동 핵심 실무자를 몰랐다고 하고, 국토부 협박으로 백현동 개발이 이뤄졌다고 말해 허위 사실 공표로 기소된 사건이다. 오래 걸릴 재판이 아니다. 그런데 기소 1년이 넘었지만 재판은 절반밖에 진행되지 않아 내년 초 선고는 사실상 어렵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1심을 6개월 내에 끝내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이미 위법 상태인데 재판부는 재판을 서두르려고 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법원 인사철인 내년 2월 이 사건 재판장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법원은 사무 분담 내규 등을 통해 형사합의부 재판장은 통상 2년, 배석판사는 1년마다 교체해왔는데 이 사건 재판장이 내년 2월 교체 대상이라는 것이다. 판사들이 형사재판을 꺼리다 보니 법원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부터 거의 예외 없이 이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니 이 대표가 지금 재판부에 긴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 재판장도 내후년 2월 교체 대상이다. 먼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사건 재판은 시작 단계다. 수사 기록만 수백 권에 달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재판장 스스로 "1~2년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이 사건 재판장도 내후년 2월까지 1심 선고를 못 한 채 교체될 수 있다.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 업자들을 재판하고 있는 재판부도 내년 2월 재판장과 배석판사가 다 바뀌는데 그 전에 선고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판사들이 '재판 구경'만 하고 떠나는 '폭탄 돌리기'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재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책임한 일이다.

    재판장이든 배석판사든 한 명만 바뀌면 재판은 '공판 갱신'을 해야 한다. 이미 이뤄진 공판을 다시 하는 것인데 앞선 재판을 간략히 요약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피고인들이 이전 재판 녹음 파일을 다 듣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거부할 방법이 없다. 대장동 민간 업자 재판 때도 배석판사들이 바뀌자 법정에서 두 달가량 주요 증인 신문 녹취 파일만 들었다. 이 대표도 재판부가 바뀌면 이를 요구할 테고 그러면 재판은 더 늘어질 것이다.

    과거엔 판사들이 중요 사건을 맡으면 교체 시기가 돼도 사건을 해결하고 떠나는 경우가 있었다. 판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지금도 법원 사무 분담 내규엔 중요 사건 처리 등을 위해 교체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하지만 김 전 대법원장 때부터 판사들 눈치 보느라 거의 예외 없이 교체 시기를 지켰다고 한다. 사법 정의가 아니라 판사들만을 위해 사무 분담을 짜고 인사를 한 것이다. 그게 지금의 '폭탄 돌리기'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기고자 : 최원규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78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