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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8) 김욱·강종익 덱스터 공동대표

    신정선 기자

    발행일 : 2023.11.29 / 문화 A2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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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기술 너무 비싸 직접 개발… 털 한올 한올 살아있는 고릴라 만들었다

    이 회사는 털로 일어섰다. 털 중에서도 고릴라 털이다. 시각 특수 효과(VFX) 전문 기업이자 종합 콘텐츠 회사인 덱스터 스튜디오(이하 덱스터)는 고릴라가 야구 선수로 나오는 영화 '미스터 고'(2013)로 국내 VFX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국내 기술로는 털 구현이 어려웠어요. 밤새 털만 생각하고, 모여서 점심 먹을 때도 털 얘기만 했어요.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모피 회사 직원인 줄 알았을 거예요." 최근 서울 상암동 덱스터 본사에서 만난 김욱(55)·강종익(54) 공동대표는 "국내에 없던 VFX 기술에 도전하며 맛본 성공과 실패가 글로벌 수준을 넘어서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 팬이라면 익숙한 여러 작품에 덱스터의 지문이 녹아 있다. 영화 '기생충' '모가디슈' '비상선언' '신과 함께',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 내달 공개되는 넷플릭스의 기대작 '경성크리처', 내년 1월 개봉하는 영화 '외계+인 2부'도 덱스터가 VFX를 맡았다.

    1990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VFX는 전봇대를 지우는 게 고작이었다. 2010년에도 못 만드는 장면이 더 많았다. '미스터 고'를 구상하던 김용화 감독은 "고릴라 한 마리만 만들어달라"며 해외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은 무려 6000만달러(약 780억원). 궁리 끝에 김 감독은 업계에서 인정받던 두 대표(당시 디지털아이디어 본부장)를 만났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봅시다." 의기투합한 세 사람을 중심으로 2011년 덱스터가 설립됐다.

    세상에 없던 기술 개발에는 두 대표의 좌절과 극복 경험이 주효했다. 강 대표는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군중 표현을 위해 '반지의 제왕'을 만든 뉴질랜드 업체를 찾아갔다가 거절당했다. "소프트웨어를 팔라고 했더니 자체 개발품이라 어렵다는 답을 듣고 막막했어요. 결국 신생 소프트웨어를 독학해 만들어냈죠."(강 대표) 김 대표는 서극 감독의 영화 '용문비갑'(2012)으로 중화권 대표 영화제인 금마장, 금상장 등의 기술상을 휩쓸었다. '용문비갑'은 1프레임 제작에 2시간이나 걸린다며 다른 팀이 두 손 든 작품이었다(1초는 24프레임). "저희가 맡아서 프레임당 25분으로 단축했죠. 그 뒤로 중국 주문이 밀려들었어요."(김 대표)

    털 개발에는 꼬박 2년이 걸렸다. 2013년 국내 최초로 털 100만 올이 한 올 한 올 움직이는 고릴라가 탄생했다. 덱스터가 자체 개발한 털 소프트웨어는 글로벌 VFX 학회인 디지프로와 시그래프에서 정식 발표돼 한국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털 다음엔 물이었다.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감독 이석훈)으로 청룡영화상 등 국내 유수 기술상을 모두 받았다. 이후 독수리와 학의 깃털, 용과 뱀의 비늘까지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잇따라 갖췄다. 시간과 비용 절감에도 주력했다. 파이프라인(3차원 제작 공정)을 재정비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빨리, 더 높은 퀄리티가 가능하도록 효율을 높였다.

    고비도 있었다. 2016년 사드 배치를 문제 삼은 한한령에 중국 주문이 끊겼다. 한숨 쉬던 덱스터를 일으켜세운 영화가 제작에도 참여한 '신과 함께'(2017)다. 코로나로 극장이 닫혀 또 고비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OTT의 문이 열렸다. 2021년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국내 첫 SF 영화 '승리호'도 선보였다. 올해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받은 '더 문'의 달 질주 장면도 그간 쌓아온 내공이 있기에 가능했다.

    "덱스터도 영화 '아바타' 만들 수 있나요?" 두 대표가 흔히 받는 질문이다. "아바타 장면은 저희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같은 소프트웨어를 쓰거든요. 문제는 자본과 시간이에요. '아바타' 같은 영화는 최소 3년간 아티스트 1500명이 매달려야 가능합니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안 되죠."(김 대표)

    덱스터는 지난 5월 개봉한 일본 도에이(東映)제작 영화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의 VFX 작업 등 해외 진출도 늘려가고 있다. 대형 LED 벽을 3D 배경으로 활용하는 버추얼 스튜디오는 덱스터가 국내 최초로 글로벌 선두 기업 럭스마키나와 협력해 경기 파주에 개장했다. 미디어아트·메타버스 등 차세대 주력 분야로도 보폭을 넓힌다. 이르면 2025년 경주에 들어설 미디어아트관에서는 덱스터가 만들어낸 거대한 용이 문무대왕릉 너머로 승천하는 장관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기고자 :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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