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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 신구·열정 박근형의 절묘한 밸런스

    이태훈 기자

    발행일 : 2023.11.29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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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연습 현장

    "가자." 에스트라공(신구)이 말했다. "안 돼. 고도를 기다려야지." 블라디미르(박근형)가 다시 말린다. "아, 그렇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다시 멈춰 선다.

    27일 오후 대학로 한 빌딩 5층의 천장 낮은 연습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런스루(run-through·실제 공연처럼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연습) 중인 배우들의 에너지로 실내가 후끈하다. 주요 배역을 맡은 네 배우의 합계 나이 315세, 연기 경력을 합산하면 228년인 것으로도 화제였던 작품. 이들은 매주 한두 번 휴식일을 빼곤 거의 매일 연습실로 출근해 런스루를 반복하고 있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각각 신구(87)와 박근형(83). 박근형은 이 연습실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늘 힘차게 뛰어다닌다. '오래 끌면 관객이 지루하다'며 대사에 가속을 붙이면서, 당초 인터미션 20분 포함, 180분쯤이던 공연 러닝타임을 160분쯤까지 줄여 놓은 1등 공신이다.

    신구는 그 박근형의 에너지를 흡수해 서늘한 바람으로 바꿔 객석으로 흘려보내는 태극권 고수 같다. 심장박동기를 달고 3시간 가까이 매일 무대에 서는 걸 염려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다리에 힘이 붙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 지켜보는 제작진이 놀라고 있다. 박근형의 대사가 빠르게 달리면 신구의 낮은 목소리가 브레이크를 걸고, 신구가 감정을 폭발시키면 박근형이 푹신하게 받아 안는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차가움과 뜨거움, 냉철함과 열정의 밸런스는 이 무대가 보여줄 아름다움의 핵심이 될 것이다.

    81세 배우 박정자는 목줄을 맨 짐꾼 '럭키'를 자진해 맡았다. "생각하라"는 명령을 받고 쉼표도 없이 8분여 내달리는 그의 독백은 이 연극의 가장 힘 있고 놀라운 장면 중 하나다. 64세 막내 김학철은 럭키를 노예처럼 부리는 지주 '포조'.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뚱딴지 같은 대사들에 웃음을 참기가 힘들다.

    2막 중간쯤, 열 명 넘는 낯선 이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얻어맞은 고고에게 디디는 "우린 행복하다"고 외치자고 말한다. 두 사람이 함께 만세를 부르며 "행복하다!"고 외친 뒤 고고가 묻는다. "그래, 이제 우리는 행복하니까,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디디는 다시 답한다. "고도를 기다려야지."

    이 오래된 물음에 대해 배우들이 내놓을 답을 무대 위에서 확인하기까지, 이제 22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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