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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5000원, 국밥 3000원… 인플레 없는 탑골공원

    김성모 기자 강우량 기자

    발행일 : 2023.11.29 / 종합 A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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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서 맛·가격 다 잡은 비결

    "장보기나 외식하기 겁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먹거리 물가가 치솟았지만, '어르신들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상권은 인플레이션 청정 지대다. 한 그릇 3000원짜리 해장국이 무쇠솥에서 펄펄 끓고, 한 장에 2000원짜리 영화표로 고전 영화를 즐기는 어르신들 발길이 이어진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최고봉이라 요즘 말로 '갓성비(신이 내린 가성비)'로 통하는 이곳. 본지는 국내 최대 맛집 추천 앱 '식신'의 대표인 식당 전문가 안병익씨와 탑골공원 일대 저물가 비결을 동행 취재했다.

    ◇노포에 숨겨진 고수의 전략

    "우아, 밍밍한 맛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닌데요. 국물 맛이 진하고 시원해서 해장에 딱이네요."

    안 대표는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원조소문난집국밥전문'의 우거지 해장국을 먹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메뉴판을 유심히 살핀 그는 "맛집의 비결인 '단일 메뉴' 전략에 집중하는 숨은 고수"라고 평가했다. 이 집의 메뉴는 3000원짜리 우거지 해장국과 2000원에 두 알인 계란 프라이, 소주·막걸리·맥주·콜라·사이다가 전부다. 해장국은 하루 500그릇 이상 팔린다고 한다. 해장국 매출만 하루 150만원, 한 달이면 4500만원쯤 된다. 안 대표는 "해장국 하나만을 주메뉴로 삼아 재료를 대량 구매해 재료비를 아끼고, 계란 프라이나 주류·음료 판매로 추가 이익을 내는 구조"라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족·친지끼리 운영하는 등 지출 다이어트를 많이 한 것 같다"고 했다.

    국밥집 옆 '한국통닭'에선 한 마리 5000원짜리 치킨을 판다. 바삭한 식감에 짭조름한 맛이 합격점을 받았다. "여기도 프라이드 치킨 하나가 주력 메뉴예요. 다만 일반 프랜차이즈 생닭(10호) 원가가 5000원쯤 하는데, 이보다는 크기를 확 줄인 아담한 닭을 쓰고, 대량 주문해 원가를 낮췄을 겁니다." 쉴 새 없이 치킨을 튀기던 이 가게 직원은 "이 가게에서만 하루 150마리가 나가고, 같은 주인이 하는 이 근방 다른 가게에서도 200마리 이상은 팔릴 것"이라고 했다.

    저가 전략은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정확히 타깃한 결과다. 본지가 상권 분석 서비스 'KT 잘나가게'에 의뢰해 방문자 숫자를 분석한 결과, 탑골공원 상권(탑골공원 및 종로 2가동·낙원동 일부)을 찾은 방문자는 지난 1월 32만2406명에서 올해 10월 57만6896명으로 늘었다. 특히 60세 이상(10만1154명→18만2760명)은 80.7%, 20~30대(14만2577명→25만2455명)는 77.1% 급증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에 높은 민감도를 보이는 노인과 청년 세대가 저렴한 물가를 유지하는 탑골공원 상권에 몰린 것"이라며 "이 일대 음식점은 마진이 낮아도 대량 판매를 통해 총수익 증가를 꾀하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박리다매와 맞춤형 전략

    박리다매 전략은 신용카드 사용액 분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신용데이터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지난 10월 한 달간 탑골공원 식당과 카페 등 외식 업체에서 신용카드로 밥값을 지불한 손님들의 평균 결제 금액은 2만2002원으로, 서울 강남 신사동 상권의 4만3292원에 비하면 절반(51%)이었다. 그러나 점포당 월간 평균 신용카드 매출은 탑골공원이 2916만원으로, 신사동(3593만원)의 81%에 육박했다.

    탑골공원 저물가의 비결엔 박리다매 전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르신에게 특화된 고객 맞춤형 전략으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도 충족시킨다.

    종로구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낭만극장은 올해 1월부터 공연장에 오는 어르신을 위한 특별 수업을 마련했다. 가수 등 공연 티켓은 5000원인데, 1000원 더 내면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사용법을 교육해 주고, 노래 따라 부르기 떼창 교실에도 참여시켜 준다. 여기에 영화 관람비 2000원을 합쳐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온종일 영화나 공연을 보고, 디지털 교육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김미경 실버영화관 대표는 "사람은 누구나 늙는데, 어르신을 위한 저렴한 영화·공연 장소가 없다. 경제적 논리보단 어르신이 갈 만한 장소를 만들자는 경영 철학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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