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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만든 美 원주민, 팔레스타인 국기 든 이유는

    뉴욕=윤주헌 특파원

    발행일 : 2023.11.25 / 사람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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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감사절의 불편한 진실

    23일 오전(현지 시각) 수천 명 인파가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을 가득 메웠다. 이곳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메이시 추수감사절 퍼레이드(Macy's Thanksgiving Day Parade)'를 보기 위해서였다. 올해 97주년을 맞이한 이 행사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모양의 대형 풍선들이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며 음악과 공연이 이어진다. 미 방송 NBC가 중계하는데 매년 2700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끈다. 올해 뉴욕은 이번 행사를 앞두고 바짝 긴장했다.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양측 전쟁이 시작된 이후 그 갈등이 유대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사는 뉴욕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번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는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다 갑자기 메이시 백화점이 있는 34번가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곳에 방송 중계 카메라가 모여 있었는데, 행진을 하던 '매시피 왐파노아그(Mashpee Wam panoag)' 부족 중 한 명이 갑자기 작은 팔레스타인 깃발을 펼쳐 든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듯한 무언의 행동이었다. 이를 중계하던 방송사가 황급히 카메라를 돌렸지만 이 영상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첫 번째 빛의 사람들(People of the First Light)'로도 불리는 왐파노아그 부족은 과거 로드아일랜드주(州) 북동부 산림지대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현재는 주로 매사추세츠주 남동부에 살고 있다. 로드아일랜드주·매사추세츠주 일대에서 약 1만2000년 전부터 거주했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17세기 이 지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왐파노아그족은 60개 이상의 마을에 걸쳐 4만여 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4000여 명에 불과하다.

    왐파노아그 부족이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이유는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영국 청교도들은 1620년 9월 종교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그해 12월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했는데, 당시 왐파노아그족이 정착을 도와줬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인 1621년 11월 왐파노아그족 90명과 메이플라워호 생존자 53명이 함께 모여 감사 파티를 했고,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와 달리 왐파노아그족은 영국 청교도인들의 감사 파티에 초청받은 것이 아니라, 축포 소리에 놀라 모여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년간 잘 버텼다는 기쁨에 벅찬 청교도인들이 하늘에 총을 쏘아대자, 이 소리를 듣고 놀란 왐파노아그족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왐파노아그 부족과 청교도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토지, 자원, 문화적 차이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고 급기야 1675년 전쟁이 벌어졌다. 패배한 왐파노아그족은 인구가 크게 줄었다. 살아남은 성인 남성 일부는 다른 나라로 팔려 갔고, 땅은 청교도인들에게 넘겨주게 됐다. 이 때문에 왐파노아그족 후손들은 터전을 뺏긴 아픔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1970년부터 '추수감사절'이 아닌 '국가 애도의 날'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서 열고 있다. 왐파노아그족 내에서도 '메이시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현지에서는 올해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서 왐파노아그족 일원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이유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진 가운데, 이스라엘에 억압받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왐파노아그족 일부도 동변상련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날 퍼레이드가 논란이 되자 왐파노아그족은 행사가 끝난 뒤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서에서 "우리 부족은 해외 분쟁에 대해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면서 "(팔레스타인의 국기를 든) 그의 행동은 부족의 결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고자 :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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