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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행] (19) 전후 농축산업 기반 닦아준 미국 헤퍼인터내셔널의 손길

    유재인 기자

    발행일 : 2023.11.24 / 종합 A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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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준 소 2마리가 7남매를 키웠다"

    경기도 작은 읍 장호원의 서기였던 최은영(1929~1978)씨는 1964년 다니던 교회를 통해 홀스타인 얼룩소 한 마리를 받았다. 고향은 6·25전쟁으로 초토화됐고, 동네에서는 가축을 찾아보기 힘들던 시기였다. 최씨에게 소를 준 곳은 미국에 본부를 둔 헤퍼인터내셔널(헤퍼·heifer, 암송아지라는 뜻)이란 비영리단체였다. 최씨는 2년 후 헤퍼에서 저지 품종의 황토색 젖소 한 마리를 더 받아 목장을 시작했다.

    최씨의 손자 최충희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나는 헤퍼의 도움을 받은 농가 3세대"라며 "할아버지는 받은 소를 기반으로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칠 남매를 교육했다. 남매 중 다섯은 대학까지 나왔다"고 했다.

    최씨 농가에서 태어난 첫 암송아지는 이웃에게 보냈다. 헤퍼와 사전에 서약한 '패싱 온 더 기프트(passing on the gift·선물 전파하기)'를 실천한 것이다. 최씨가 처음 받은 소도 헤퍼의 도움을 받은 다른 목장 소가 낳은 것이었다.

    최씨 가족은 6·25전쟁 이후 헤퍼가 진행한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 작전' 수혜 가구 중 하나다. 헤퍼는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선박·항공편으로 유정란 21만6000개, 돼지 331마리와 암소 222마리 등 가축 약 3200마리를 한국으로 보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국민들이 가축을 키워 번식시킬 수 있도록 자립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본지와 인터뷰한 헤퍼의 수혜자들은 "헤퍼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전후 한국의 1세대 농가를 이뤄 한국 축산업 기반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경북 안동에서 만난 이재복(86)씨도 헤퍼의 도움을 받아 자립 발판을 다졌다.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농사지을 땅 한 평 없이 가난하게 자랐다. 이씨는 1960년대 후반, 군 제대 이후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 헤퍼에서 파견한 농업 선교사 폴 킹스베리(Kingsberry)를 만났다. 1957년 한국에 온 킹스베리는 한국에서 농촌 경제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고, 이씨에게도 농축산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이씨는 그의 도움으로 대전의 기독교 농민 학원을 수료했고, 헤퍼가 수료생들에게 준 젖소 두 마리를 받아 마을로 돌아왔다. "전쟁이 막 끝나서 농축산을 가르쳐 줄 사람이나 지도서도 없고 막막한 거라. 근데 이제 선교사들이랑 농민 학원이 이렇게 다 가르쳐 줬지. 그래서 살았소."

    헤퍼는 한국 축산업이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될 즈음인 1976년 철수했다가, 2020년 한국 사무소(헤퍼코리아)를 다시 설립했다. 40여 년 만에 다시 연 사무소는 가축을 받는 처지로서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라에 가축을 보내기 위해 가동을 시작했다. 헤퍼코리아는 2021년 '네팔에 소 101마리 보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씨 가족과 이씨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네팔에 소를 기부했다.

    이씨는 "나는 미국은 늘 참 부유하고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런 나라와 동맹이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제 우리도 다른 나라에 그런 도움을 주도록 해야겠지요."
    기고자 : 유재인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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