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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150) 은행 파산과 민폐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발행일 : 2023.11.22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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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이 고스톱을 칠 때 '독박'은 '혼자 쓰는 바가지'다. 자기가 낸 패 때문에 승자가 뒤바뀌면, 그 민폐를 책임지는 벌칙이다. 혼자서 다른 패자 몫까지 물어준다. 노름꾼들은 그 쓰라린 고통을 잘 안다.

    과거 미국의 은행 주주들도 독박의 쓰라림을 잘 알았다. 은행이 망하면, 원래 투자금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돈을 더 물었다. 예금자에게 끼친 민폐를 책임지는 것이다. 1863년 남북전쟁 중에 링컨 대통령이 만든 그 벌칙을 이중 책임 제도(double liability)라고 한다. 독박의 위험을 지는 주주들이 은행을 건전하게 운영토록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은행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면서 증자가 더뎌지고, 은행들은 구멍가게 수준을 면치 못했다. 1920년대 초 전국에 은행은 2만9087곳이었지만, 지점을 가진 은행은 530곳에 불과했다. 결국 이중 책임 제도를 폐기했다. 대신 은행이 파산하면, 예금보험공사가 예금 지급을 책임지도록 했다. 1933년 출발한 예금 보호 제도다.

    그러자 새로운 부작용이 생겼다. 금리만 높으면, 부실한 은행에도 예금을 맡겼다.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다. 은행들은 그 돈으로 꾸역꾸역 대출을 늘렸다. 그 바람에 남북전쟁 때 25%에 이르렀던 은행 평균 자기자본 비율이 100년 동안 8%로 뚝 떨어졌다. 그래서 더 낮아지는 것을 막았다. 1992년 시작된 BIS 자기자본 규제다.

    자기자본 규제도 뱅크런은 못 막는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은 하루 만에 망했다. 그러자 연방정부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인수 합병이든, 국유화든, 빨리 개입해서 민폐를 줄이도록 한 특별법 덕분이다. 영국,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은 부실 은행 정리가 하세월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으로 뽑혔으니 이젠 부실 은행 정리 절차도 세계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기고자 :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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