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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탄광의 국군포로 실상 알리는 70대 북송 재일교포

    김민서 기자

    발행일 : 2023.11.22 / 사람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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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스센터 인권 세미나서 증언

    북송 재일교포 출신으로 북한 함경북도 회령 지역 탄광에서 일한 이상봉(77)씨가 21일 탄광에서 만난 국군 포로들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국군 포로를 송환하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있을 수 없다고 힘을 모아 외쳐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단법인 물망초 주최로 열린 인권 세미나에 참석해 자신이 일했던 북한 회령시의 유선탄광에서 만난 국군 포로들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 홀로 탈북한 이씨는 가족이 여전히 북한에 있어 이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가명을 썼다. 가족들과는 3년 전 연락이 끊겼고, 이씨는 이날 증언을 마친 뒤 일본으로 돌아간다.

    1946년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난 이씨는 1960년 북송 귀국선에 올라 부모님과 함께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이 맞닿은 북한의 최북단 회령시로 이주했다. 이씨는 탄광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1966년 탄광 노동자의 삶을 선택했다. 북한은 광부들에게 북한 군복을 입혔고 탄광은 군대처럼 운영됐다.

    이씨는 "국군 포로가 가장 많이 배치된 곳은 아오지 탄광으로 약 800명 정도 배치됐다"고 했다. 그는 탄광의 동료 노동자들을 통해 1957년쯤 아오지 탄광 국군 포로 35명이 집단 폭동을 일으켜 주모자 6명이 총살되고 나머지는 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내가 유선탄광에 배치되기 전인 1950년대에 국군 포로가 600명 정도 있었다는데 내가 일을 시작한 1966년엔 낙반 사고, 가스 폭발 사고, 폐병 등으로 사망해 남아 있는 국군 포로는 90명 정도였다"고 했다.

    그가 감시의 눈을 피해 탄광에서 사귄 국군 포로는 강원 홍천에서 끌려온 경북 대구 출신 이승식씨, 경기 평택 출신 주용수씨, 경북 상주 출신 이상범씨, 충청도 출신 박주용씨, 강원 춘천 출신 박팔양씨, 의용군 출신인 홍택씨 등이다. 이씨는 "국군 포로를 열차에 실어 함경북도 10여 개 탄광 역에 신문 배달하듯이 집단으로 내려놨다"고 했다.

    이씨는 국군 포로와 가족들이 공개 처형 당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씨는 "1989년인지 1990년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며 "아침 출근길에 '민족배반자 이승식 가족에 대한 인민재판'이라고 적힌 커다란 벽보를 봤다"고 했다. 탈북을 시도했다 붙잡힌 이승식씨 가족 5명의 공개 처형을 예고한 공고문이었다. 이승식씨 가족들은 검은 천으로 눈을 싸매고 입안에 모래주머니 재갈을 밀어 넣은 모습으로 말뚝에 묶여 있었고 5개의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고 한다. 사격수 1인당 3발씩 연속 사격을 했다.

    탄광에서 노역한 국군 포로들은 '애국가' '신라의 달밤' 등을 애창곡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씨는 "경북 상주 출신의 이상범씨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 언제나 마음속으로 부르는 노래는 애국가'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1974년쯤 만난 박주용씨는 목욕탕에서 등을 씻어주던 사이였고 도시락에 먹음직스러운 백살구를 싸와서 나눠 먹었다고 한다. 주용수·박팔양씨는 축구를 잘했고 '신라의 달밤' '눈물 젖은 두만강' '타향살이' 등을 멋지게 불렀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이 탄광에서 만나 가깝게 지낸 국군 포로들의 얼굴 생김새와 탄광 구조를 자세하게 그려 놨다. 그는 "내가 탈북할 줄 알았다면 그때 미리 이들의 나이, 고향, 소속 부대, 계급 등을 자세히 물어 기록해 놨을 텐데 그렇게 못한 게 후회된다"며 "(송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이씨는 "과거 대통령 3명이 방북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했으나 국군 포로 송환을 요구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나와 함께 있던 국군 포로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씨는 한국 국민을 향해선 "북한은 '지붕 없는 감옥'"이라며 "한국에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단 1년만 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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