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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사이언스의 별들] 실리콘밸리의 대부, 피터 디아만디스

    박건형 테크부장

    발행일 : 2023.11.21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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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첫 민간 우주선, 위성 인터넷… 머스크·베이조스 앞서 그가 있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의 화제를 모으는 기업인이 있다. 행동 하나, 말 한마디, 소소한 신변잡기도 기사화되고 전기는 발매 동시에 전 세계를 강타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바로 이 시대 최고의 혁신가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다. 그런데 머스크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일까. 그보다 앞서 우주개발 같은 혁신적인 사업에 도전하고 머스크에게 영감을 준 존재가 있지 않을까. 실리콘밸리에서는 의사이자 공학자인 피터 디아만디스(Peter H Diamandis·1961~) X프라이즈 재단 회장이 그 주인공이라 확신한다. 여덟 살 때 우주를 꿈꾸기 시작한 디아만디스는 대학 시절 전 세계를 아우르는 우주 학생회를 조직해 수많은 우주 사업가를 키워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블루 오리진,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버진 갤럭틱 이전에 이미 디아만디스가 주도한 최초의 민간 우주선이 우주를 향해 날았다. 지금은 보편화된 로켓 재사용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도 디아만디스였다. 그가 만든 수십 개 스타트업은 초고속 열차 하이퍼루프, 몸에 가져다 대면 질병을 알려주는 '트라이코드', 지구 저궤도 통신, 소행성 희귀 광물 채굴, DNA(유전자) 분석을 통한 맞춤형 의료 등 꿈같은 일에 도전했다. '미래의 전도사'이자 '실리콘밸리 대부'로 불리는 디아만디스 삶의 좌우명은 "세상의 골칫거리는 기업가의 사업 기회이다. 억만장자가 되려면 억만 명의 문제를 풀어라"이다.

    부모 뜻 맞춰 의사 자격증까지 따

    뉴욕 브롱크스의 그리스계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디아만디스는 어린 시절 단 한 가지에 꽂혀 있었다. 바로 우주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지켜본 여덟 살 때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주에 대해 설명하기를 즐겼고 방 안에는 TV 시리즈 스타트렉 포스터와 기념품이 가득했다. 열두 살 때는 5000명이 참가한 전미 로켓 디자인 공모전에 3개의 로켓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출품해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염화칼륨과 마그네슘 같은 화학물질을 우편으로 주문해 폭탄을 만든 뒤 동네 수영장에 던져 얼마나 큰 물보라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고등학생 때는 4단 로켓 '몽고(Mongo)'를 직접 만들어 쏘아 올렸지만 폭발했고 그 길로 친구와 함께 도망쳤다. 디아만디스는 포브스에 "지금 내가 그때 했던 일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잡혀갈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디아만디스에게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고 강요했다. 그는 고집을 부리는 대신 "가족과 내 꿈을 둘 다 이뤄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린드버그 대서양 횡단이 '열쇠' 

    디아만디스는 197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 진학해 생물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2학년 때는 MIT·하버드·프린스턴 등 주요 대학 학생들을 모아 비영리 조직 '우주 탐험 및 개발을 위한 학생회(SEDS)'를 창립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 95개 지부와 수만 명의 학생이 몸담은 이 조직 창립식에서 디아만디스는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태어난 우리는 이전에 지구상에 없던 '우주 세대'"라고 선언했다. 베이조스도 훗날 SEDS 프린스턴 지부장이 됐다. 디아만디스는 MIT를 졸업한 뒤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몇 년 뒤 하버드를 휴학하고 MIT로 돌아와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슨 스페이스 센터, MIT 화이트헤드 바이오메디컬 연구소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항공 및 우주비행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다시 하버드로 돌아가 의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의사 일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디아만디스에게 하버드 의대 학장은 "절대 임상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졸업장을 내줬다.

    디아만디스는 의대 졸업반 시절 초소형 위성 발사 회사인 인터내셔널 마이크로 스페이스를 세우며 창업의 세계에 첫발을 디뎠다. 100㎏의 물체를 지구 궤도로 올리는 소형 발사체 오비털 익스프레스를 직접 설계했고 1991년에는 5개의 위성을 띄워 지상 기지국 없이 음성 통신을 공급하는 사업에도 나섰다. 수십 년 전에 이미 스페이스X의 지구 저궤도 인터넷 스타링크를 시도한 것이다. 문제는 당시만 해도 우주는 국가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민간 회사들은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은 사업을 외면했다. 디아만디스는 찰스 린드버그와 그의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혼(The Spirit of St.Louis)'에서 돌파구를 떠올렸다. 뉴욕 호텔 거부 레이먼드 오르테이그는 1919년 "뉴욕에서 파리까지 직항으로 비행한 최초의 비행사에게 2만5000달러(현재 가치 42만200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수많은 조종사와 비행기 제작자들이 뛰어들었다. 실제 비행에 도전했던 조종사 40명 가운데 21명이 목숨을 잃은 끝에 결국 린드버그가 1927년 5월 21일 33시간 30분 만에 인류 첫 대서양 단독 횡단이라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디아만디스는 비행기의 시대를 본격화한 오르테이그상을 현대에 부활시켜 민간 우주 산업 붐을 일으키고 대중적인 관심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1994년 만들어진 것이 'X프라이즈 재단'이다. '미지' '도약' '알려지지 않은 것'을 뜻하는 알파벳 X를 인류의 미래 숙제로 보고, 이를 풀어내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X프라이즈 재단의 첫 프로젝트는 '재사용 가능한 유인 우주선을 2주 내 두 번 발사하는 최초의 비정부 기구에 1000만달러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디아만디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상금을 후원한 통신 소프트웨어 기업가 아누셰흐 안사리의 이름을 따 '안사리 X프라이즈'로 불린 이 프로젝트에 7국에서 26팀이 뛰어들었다. 2004년 10월 4일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후원한 '모하비 에어로스페이스 벤처스'가 만든 '스페이스십 원'이 우주 비행에 성공하면서 상금을 가져갔다. 스페이스십 원은 최초의 민간 우주선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안사리 X프라이즈는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인 우주 기업 버진 갤럭틱을 세운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우주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우던 머스크와 베이조스에게도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됐다"고 했다. 현재의 민간 우주개발 시대의 출발점에 디아만디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구글 창업자도, 억만장자도 동료

    2.35L의 휘발유로 100㎞를 달리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자동차를 만드는 '오토모티브 X프라이즈', 해양에 유출된 기름을 빠르게 정화할 방법을 찾는 '웬디 슈밋 오일 정화 X챌린지', 사람의 몸을 모니터링하는 센서를 만드는 '노키아 센싱 X챌린지', 몸에 가져다 대면 질병을 진단해주는 '퀄컴 트라이코더 X프라이즈', 달 표면에서 탐사선을 발사하고 착륙시키는 '구글 루나 X프라이즈' 등 지난 20년간 수십 건의 X프라이즈 대회가 진행됐다. X프라이즈 재단 이사회에는 머스크와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인도 억만장자 라탄 타타,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런, 허핑턴 포스트 공동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 등 저명인사가 가득하다. 모두 "한 국가나 한 사람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디아만디스의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로젝트마다 수천만 달러씩의 상금을 거침없이 내놓는다. X프라이즈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제시한 목표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종료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디아만디스는 "도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디아만디스는 자신의 모든 상상을 사업으로 만들었다. 보잉 727기를 개조해 포물선 비행을 하는 방식으로 무중력을 구현하는 무중력 주식회사(제로-G)는 지금까지 1만명 이상에게 우주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2007년 디아만디스와 함께 4분간 무중력을 체험한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나처럼 근육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중력 상태는 축복"이라고 했다. 우주 관광객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실어나른 '스페이스 어드벤처스', 소행성에서 고가의 희귀 광물을 채굴해 지구로 가져오는 '플래니터리 리소시스', DNA를 분석해 맞춤 치료법을 제공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휴먼 롱제비티' 등도 창업했다.

    디아만디스에게는 지나친 기술 낙관주의자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면서도 "지금은 좋든 싫든 우리 모두가 그 힘을 건네받은 시대"라고 했다. 수백년 전 국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왕과 왕비뿐이었고, 100년 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기업가였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누구나 바꿀 수 있고 풍요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표] '미래의 전도사' 피터 디아만디스
    기고자 : 박건형 테크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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