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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증가 속도도 세계 3위로

한국의 기업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26%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한 나라의 경제 규모보다 기업부채 총량이 큰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홍콩(267.9%), 중국(166.9%), 싱가포르(125%), 일본(115.2%), 베트남(107%) 등 6국뿐이다.

대부분 국가가 최근 고금리 속에 '부채 다이어트'에 나섰지만, 한국은 거꾸로 기업부채가 더 늘고 있다. 게다가 증가 속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 연체가 바짝 고개를 들고 파산이 늘어나는 등 부채 중독의 부작용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기업부채가 가계부채에 이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다른 나라 기업 빚 줄이는데…

1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세계 34국(유로 지역은 하나로 묶어 통계를 냈음)의 GDP 대비 비(非)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평균 66.7%였다. 한국(126.1%)은 홍콩,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에 올랐다. 지난 2분기 말엔 싱가포르가 3위, 한국은 4위였지만 3개월 사이 한국 기업부채 비율이 5.2%포인트 급증하면서 싱가포르를 제치고 세계 3위가 됐다.

1년 전 대비로도 한국의 기업부채 규모는 5.7%포인트 높아졌는데, 이 같은 증가 속도는 러시아(13.4%포인트)와 중국(8.6%포인트) 다음 세 번째였다. IIF 집계 대상인 34국에선 지난 1년간 경제 규모 대비 기업부채 규모가 평균 1.9%포인트 줄었다. 대부분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부채 다이어트'에 나선 결과다. 그럼에도 한국은 빚을 더욱 늘려, 현재 기업부채 규모가 1998년 외환위기 때(108.6%)보다도 커졌다.

빚을 내서 투자에 나서는 등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면 경제 전체에 긍정적이겠지만, 단지 버티기 위해 빚을 계속 내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한 빚을 지면 채무불이행과 파산 위험이 커져 경제에 부담이 된다. 한국은 지금 후자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 중 벌어서 이자도 못 낸 기업이 전체의 42.3%에 달했다. 2009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고였다.

◇기업 파산, 코로나 때보다 많아

6월 말 기준 국내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대출을 합치면 1500조원이 넘는다. 코로나 때 각종 정책자금 등으로 버텨오던 이들이 추가로 빚을 내며 버티다 못해 하나 둘 연체와 파산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중소법인 연체율은 0.59%로 1년 전(0.38%) 대비 0.21%포인트 높아졌고, 개인사업자 연체율도 0.5%로 1년 전(0.2%)보다 0.3%포인트 뛰었다. 가계대출보다 연체율(0.38%)이 높고, 증가세도 더 가파르다.

버티다 못해 파산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파산신청한 법인은 121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가장 파산 건수가 많았던 2021년의 1069건도 넘어섰다. 법인 회생 신청도 116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3.6% 늘었다. IIF는 보고서에서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은행이 민간 부문 대출을 줄이면서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들 사이에서 취약성 증가의 징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IIF가 주요 17국 기업 부도 증가율을 추린 결과, 한국이 네덜란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았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옥죄면서 은행들이 기업대출 영업 강화에 나선 것이 기업부채 급증을 낳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9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위원은 "최근의 기업대출 증가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이후 은행이 기업에 대한 대출 영업을 강화한 데 기인한 면이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예대마진 위주의 은행 수익구조로 은행이 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픽] GDP(국내총생산) 대비 기업부채 규모 / 고개 드는 중소·개인사업자 연체율 기고자 :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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