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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연극으로 보는 과학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발행일 : 2023.11.20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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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발달의 재앙 '멋진 신세계'… AI 창시자 튜링의 삶

    오래전부터 인류는 과학 기술이 진보하면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꿈꿔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일까요, 디스토피아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연 두 편이 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1932년 발표한 소설을 연극화한 동명(同名) 작품 '멋진 신세계'(대전예술의전당·10월 31일~11월 5일)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1912~1954)의 삶과 업적을 다룬 연극 '튜링 머신'(LG아트센터 서울·11월 3~25일)입니다.

    무대 위에 펼쳐진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과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3대 고전'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오 놀라워라! 이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라니! 인간은 참으로 아름다워라! 오 멋진 신세계,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 희곡 '템페스트' 한 구절에서 가져왔지요.

    하지만 헉슬리가 예견한 미래 사회는 결코 '멋진 신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소설 배경은 가상 연도인 '포드 기원 A.F(After Ford) 632년 영국'입니다. '포드 기원'이란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가 개발한 '포드 모델 T(Ford model T)' 생산 연도 1908년을 인류의 새 기원으로 삼은 것을 의미해요.

    20세기 초반만 해도 긴 수작업 공정을 거쳐 일반인은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비쌌던 자동차는 '모델 T' 대량 생산이 성공하면서 대중에 널리 보급됐습니다. 누구나 자동차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거죠. 즉 '포드 기원'은 산업화와 기술 문명을 대표하는 인류의 기념비적인 해를 기리면서도, 한 치도 어긋남 없는 강력한 통제 속에서 제어되는 컨베이어 자동화 시스템 같은 '포드주의'를 상징합니다. 소설에서는 인간조차 컨베이어 위에서 인공 수정돼 병 속에서 제조된다는 설정으로 '포드주의'의 섬뜩함을 그리고 있어요. 결국 헉슬리는 비인간적 기계 문명이 가져올 재앙을 '멋진 신세계'라는 반어적 의미로 소설 곳곳에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32년 헉슬리가 그린 서기 2540년의 미래는 연극으로 어떻게 시각화했을까요. 연극 '멋진 신세계'는 350여 쪽에 이르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두 시간으로 압축하는데, 빠른 전개를 위해 원작에는 없는 '싸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극의 배경을 설명하는 해설자이자, 철저하게 통제되는 계급 사회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이죠. 그의 역할을 통해 줄거리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의 구분, 미래 사회의 경관 등은 영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의 몰입을 더합니다.

    42세에 세상 뜬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

    영국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과 업적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42세로 세상을 떠난 튜링의 이른 죽음 이후였습니다. 그 전까지 튜링에 관한 모든 기록은 국가 기밀로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암호를 만드는 데 쓴 기계 '에니그마(Enigma)'의 암호 해독에 성공해 연합군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튜링이 만든 '튜링 봄브(Turing Bombe)'라는 기계는 컴퓨터 모델 초기 단계로, 이후 개발된 세계 최초 프로그래밍 디지털 컴퓨터 '콜로서스'의 기술적 토대가 됐습니다.

    튜링은 천재성과 집요한 노력으로 암호 해독에 성공했고, 이는 독일군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2차 대전 기간을 단축해 수많은 목숨을 구했죠. 튜링은 종전 후 연구를 계속했고, 1950년 '인공지능'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이를 고안한 선구적인 연구였어요. 하지만 놀라운 성과에도 튜링은 당시 영국에서 법으로 금지하던 동성애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그는 불명예 속에서 1954년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우리나라 초연인 '튜링 머신'은 2019년 프랑스 연극계 최고 권위상 '몰리에르 어워즈' 4부문 수상작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연극은 2인극입니다. 주인공 튜링을 중심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쫓는 가상의 인물 '형사', 튜링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친구이자 첫사랑인 크리스토퍼 모컴, 그리고 튜링의 연인이었지만 그의 혐의가 확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아널드 머리 등이 등장합니다. 배우 한 명이 튜링의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여러 배역을 맡습니다.

    무엇보다 무대가 무척 인상적이에요. 기존 극장 구조처럼 무대를 일제히 바라보는 객석 대신, 극장 한가운데 에니그마 암호를 푸는 '튜링 봄브'가 놓여 있고, 튜링의 삶에 영향을 미친 상징적인 물건을 곳곳에 배치했죠. 친구의 사진, 즐겨 두던 체스 판, 마라톤 때 신고 뛰던 운동화, 그리고 튜링의 자살 현장에 놓여 있던 한입 베어 먹은 사과 한 알이죠. 참고로 튜링은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특별 사면으로 사후 59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튜링 테스트(Turing test)


    앨런 튜링이 처음 제안해 '튜링 테스트'라 부르는 이 시험은 인간이 묻는 질문에 인간답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의 지능을 판별하려 했던 시도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한다고 해 '이미테이션(모방) 게임'이라고도 하는데, 앨런 튜링을 주인공으로 하는 같은 이름의 영화도 있어요.

    시험은 질의자 한 명과 응답자 두 명으로 구성하는데, 응답자 중 하나는 컴퓨터이고 나머지는 인간입니다. 질의자는 둘 중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질문을 던지고, 응답만으로 컴퓨터와 인간을 구별합니다. 만약 질의자가 이를 판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봅니다.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 개발에 큰 영감을 주었어요.
    기고자 :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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