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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포퓰리즘의 나라

    서유근 부에노스아이레스 특파원

    발행일 : 2023.11.18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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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세르히오 마사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이 외신 기자들을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경제부 건물로 초청했다. 오는 19일(현지 시각) 열릴 대선 결선투표에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집권당 후보로 나서는 자신을 어필하려는 자리였다. 경제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마사의 선거 포스터였다. 입구부터 계단을 비롯해 각층 곳곳에 붙어 있었다. 동료 외신 기자들은 정부 부처 건물 여기저기에 버젓이 특정 후보의 선거 홍보물이 걸려 있는 게 신기한 듯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외관만 봐서는 정부 부처 건물인지 선거 캠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정부 부처를 선거 캠프처럼 치장한 그는 정부 실세이자 현직 장관 지위를 적극 활용, 정책마저 선거 도구로 삼고 있다. 지난 수년간 '폭망'한 경제로 집권당 인기가 떨어지면서 지난 8월 예비선거(PASO)에서 3위에 그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후엔 정도가 심해졌다.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보너스를 살포하고, 대다수 근로자의 소득세를 감면했다. 공공 서비스 요금을 동결하고, 그대로 두었으면 수십%가 올랐을 필수 품목 약 2000개의 가격을 억지로 통제했다.

    효과는 강력했다. 3위였던 마사는 지난달 열린 본선투표에서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유권자들이 연 142%에 달하는 물가상승률을 야기한 현 정부의 실책은 잊고, 당장의 선심성 정책의 달콤한 맛에 취해 표를 던진 것이다. '포퓰리즘의 나라'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효과를 확인한 마사는 확실한 결선투표 승리를 위해 돈 풀기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두 달간 발표한 포퓰리즘 정책에 투입될 재정이 GDP의 1.3%라고 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눈앞의 선거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 정책이 계속되자, 이젠 친정부 좌파 성향의 매체조차도 향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비판한다.

    전 세계에서 대표적 포퓰리즘 국가로 아르헨티나를 꼽지만 선거를 앞둔 집권 세력의 선심성 정책이 아르헨티나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정부·여당이 민생 정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총선을 의식해 급조했다는 비판을 받는 정책들도 여럿 나왔다. 당국이 지난달만 해도 괜찮다던 공매도를 정권의 의지로 한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겠다는 등의 정책들도 총선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10년 주기론'을 깨고 유권자들이 정권 교체를 택한 데는 문재인 정부가 남발한 포퓰리즘 정책과 비상식적인 정부 개입이 큰 영향을 미쳤다. 포퓰리즘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와 한국에서 표심의 향방은 달랐던 셈이다. 총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집권 세력에 포퓰리즘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정부·여당이 어떻게 정권을 잡게 된 것인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기고자 : 서유근 부에노스아이레스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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