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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국이 만든 가난

    채민기 기자

    발행일 : 2023.11.18 / Books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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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슈 데즈먼드 지음|성원 옮김|아르테|416쪽|3만2000원

    미국은 가장 부강한 나라다. 세계 1위인 국내총생산(GDP)이 3~8위 국가의 합계보다 크고 광활한 영토엔 자원이 가득하다. 동시에 미국에선 3800만명이 기초 생필품 부족에 허덕이고 집 없는 학생 100만명이 모텔과 자동차, 버려진 건물에 산다. 빈곤과 양극화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떤 선진 민주 사회보다도 가난이 판을 친다"는 점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가난은 독보적이다.

    이 모순이 프린스턴대 사회학 교수인 저자의 출발점이었다. 처음엔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대두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는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반(反)빈곤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미국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전작 '쫓겨난 사람들'(2016)이 밀워키의 여덟 가정이 강제 퇴거에 내몰리는 과정을 추적한 작업이었다면, 이번 책은 더욱 거시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해법을 모색했다.

    ◇누군가의 가난은 다른 사람의 이익

    가난은 단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존감, 안정감, 안전의 결핍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다. 가난이 누군가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을 온존(溫存·고치지 않고 그대로 둠)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저자를 포함한 '우리', 즉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돼 있다. "우리가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난한 게 아니라, 우리가 부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난한 것이다."

    윤리적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주장이지만 '우리'가 부도덕하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가난한 동네의 임대주택이 평범한 동네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것은 주인이 유달리 악독해서가 아니라 그게 가능한 구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미 정부는 가난한 동네, 흑인 동네에서 주택 담보 대출 보증을 해 주지 않았다.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지금도 은행들은 그런 지역에서 영업하는 것을 꺼린다. 저소득층은 돈을 갚을 수입이 있어도 대출에서 소외된다. 돈을 버는 족족 월세를 내는 것 외에는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

    은행이 무료로 개설해 주는 계좌 하나에도 가난한 이를 더 가난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이런 계좌는 초과 인출 수수료(잔고 이상을 인출하게 해주고 받는 수수료)로 들어온 수십억 달러 덕에 무료일 수 있다." 2019년 미국 은행들이 이 수수료로 벌어들인 116억8000만달러(약 15조원) 가운데 84%를 전체 계좌 보유자의 9%가 냈다. 이들 대부분이 평균 잔고 350달러 이하의 고객이었다는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은행의 돈줄이 됐음을 시사한다.

    ◇"빈곤 퇴치는 모두의 싸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는 가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해법은 핀셋식이다. 복지 혜택 신청을 모바일 쇼핑만큼 쉽게 만들 것, 부자들에게 가는 혜택을 줄이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 은행 고객이 잔고 이상을 인출하려고 할 때 거래가 안 되게 하는 것도 해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미국 사회에 한정해서 논의를 전개하지만 한국에서 거울삼을 만한 내용들도 있다. 저소득층 주거 해결책의 하나로 공공 주택을 언급한 대목은 문재인 정부 시절 호텔 방을 개조해 1~2인 가구에 제공한다는 공공 임대주택 확대 방안을 내놨다가 수요자들에게 외면받은 일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너무 낡고 황폐해져서 폭약으로 허무는 것이 자비처럼 느껴졌던 고층 건물"이 아니라 '텃밭과 정원을 갖춘 사우스브롱크스(뉴욕)의 단지' '참나무로 에워싸인 오스틴의 126세대' 같은 곳들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결국 공공 주택이 아니라 '어떤' 공공 주택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 저자는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는 미국 서비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팁으로 먹고사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같은 상징적 수치를 목표로 급격히 임금을 올리고, 현실화된 고용 악화를 감추려 통계에 손을 댄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가난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이 연결돼 있다면 빈곤은 모두의 문제가 된다. 한 방에 빈곤을 퇴치할 묘책은 존재하지 않지만, 빈곤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마음가짐은 있다. "빈곤을 없애기 위해 아주 똑똑해야 할 필요도 없다. 빈곤을 충분히 싫어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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