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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나라가 먼저라는 인요한은 외롭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발행일 : 2023.11.15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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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월, 인요한은 덜컹덜컹 겨울의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고 평양을 향했다. 압록강 둑길에 불을 지펴 놓고, 어린아이들이 달리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새카만 얼굴에 해맑은 웃음. 그 하얀 웃음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어나고 자란 전라도 순천의 어린 시절을 보았기 때문이다. 순박한 아이들의 하얀 웃음에 눈물 짓는 토속적 한국인은 이제 드물다. 인요한의 심성에는 된장 냄새가 배었다. 그 맛있는 김치를 먹지 않는 미국인을 이해할 수 없어, 한국에 돌아온 그다.

    그의 가족은 4대에 걸쳐 한국에 뼈와 살, 영혼까지 바쳤다. 1895년 27세 때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외할아버지 유진 벨 목사는 1925년 이 땅에 묻혔다. 외할머니 로테 벨은 풍토병에 걸려 1901년 32세에 생을 마감했다. 남편은 선교 여행 중이었고, 로테 벨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숨을 거뒀다. 조지아 공대를 수석 졸업한 할아버지 윌리엄 린턴은 21세 때 선교사로 와 많은 학교를 세웠지만 신사참배를 거부해 추방당했다. 아버지 휴 린턴은 2차 대전 때 해군장교로 일본과 싸웠다. 종전 후 신학대학에 다니다, 6·25전쟁 때 재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고구마를 먹으며, 600곳이 넘는 교회를 세웠다. 한국의 어떤 가문이 4대에 걸쳐 대한민국에 영혼까지 바쳤는가.

    인요한 일가의 삶에는 한국 역사의 애환이 가득 담겼다. 한국을 괴롭혔던 가난과 무지, 질병, 식민통치, 독재, 그리고 공산주의. 한국인보다 더 치열하게 그 숙명적 멍에와 싸웠다. 인요한도 그랬다. 1980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인요한은 광주 소식을 듣고, 현지에 내려갔다. 널린 시신을 목격하고, 도청에서 시민군의 외신 기자 인터뷰를 통역했다. 광주를 빠져나왔으나, 젊은 시절 그 기억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1980년 광주의 순수성을 믿었고, 일찍이 민주당을 사랑했다. 하지만 북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언했다. 얼굴이 벌게진 노 대통령은 담배를 물고 등을 돌렸다. 의료 지원차 29번이나 북한을 다녔지만, 인천이나 김포에 내리면 눈물이 흐르고 땅바닥에 뽀뽀를 하고 싶어진다. 북한 군가를 만든 정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요한이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패하고 민심의 이반을 통감한 여당의 간청 때문이다. 인요한은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최초의 한국형 앰뷸런스가 인요한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15인승 승합차로, 최종적으로 소형 화물차를 개조해 만들었다. 응급 구조 제도도 처음 만들고 응급구조사도 양성했다. 아버지 휴 린턴 목사가 교통사고로 병원 이송 중 숨진 게 천추의 한이었다. 그는 유진 벨 재단과 함께 북한 결핵 환자 20만명을 치료하고, 15만명을 완치시켰다.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사내다.

    인 위원장은 첫 일정으로 5·18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이재명 대표에게는 "이제 정쟁 좀 그만합시다. 그만하고 나라를 위해 같이 싸우자"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강연에서는 "나라가 먼저다. 정쟁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나라를 위해 작은 차이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치가 싸우기만 하고, "전라도 말로 어문 짓거리만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국가 수준만큼 정치도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에서 언제 이런 말을 들어보았나. 그의 진심어린 호소가 정쟁에 지친 국민의 가슴을 때렸다.

    하지만 지금 인요한은 외롭다. 그런 고결한 신념이 정치의 세계에서 순순히 받아들여질 리 없다. 조광조나 이율곡처럼 실패의 숙명을 안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한테나 그렇게 해!" "너희나 멈춰"라고 맞고함을 쳤다.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권유받은 국민의힘 '지도부·중진·친윤'은 침묵하거나 반발 일색이다. 자기 정치를 한다거나, 영남 정치 세력을 고사시키려는 용산발 음모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당내 통합을 위해 손 내민 홍준표, 유승민, 이준석도 까칠하다.

    이대로면 혁신위는 절로 무너질 판이다. 역대 모든 혁신위처럼 인요한호도 또 하나의 소모품인가. 그러고도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강서구청장 선거는 그럴 수 없다는 명백한 경고다. 지난 대선처럼 내년 총선도 또 하나의 선거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앞날은 물론 체제 선택에 가까운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다. 한국의 선거는 정당보다 대통령 얼굴로 한다. 인 위원장은 "난 온돌방 아랫목에서 큰 사람이다. 월권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혁신위와 국민의힘의 운명은 결국 대통령이 어떤 자세를 가지는지에 달렸다. 나라가 먼저다. 발본적 혁신 없이는 승리도 없다.
    기고자 :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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