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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뉴욕의 한인 셰프'] (4) '오이지미' '봄'의 김세홍 셰프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발행일 : 2023.11.15 / 여론/독자 A3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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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탈, 부채 NO… 맨해튼서 K인테리어의 새 장을 열다

    김세홍(43) 셰프는 한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근무했다. 당시 출장으로 다녔던 외국의 한식당 수준에 실망을 했고, 해외에서 제대로 된 한식당을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주저 없이 뉴욕의 미국요리학교(CIA)로 유학을 떠났다. 창업의 목표가 있었으므로 CIA 재학 중에 요리 이외에도 재료 관리, 인사 관리 등 체계적인 미국의 레스토랑 경영 시스템을 배우며 관심을 가졌다. 졸업 후 유명 프렌치 레스토랑 불리(Bouley) 등에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2015년,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 '오이지(Oiji)' 레스토랑을 열었다. 과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단골이었던 한식당 '또순이(Dok Suni)'가 있던 자리였다. 오이지는 육회나 굴보쌈, 장조림밥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맛의 한식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었다. 뉴욕타임스의 음식평론가 피트 웰스(Pete Wells)는 솔잎으로 훈제한 고등어 요리를 언급하며 "고객을 메인(Maine)주의 숲속으로 초대한 것 같다"고 극찬했고, 그해 '올해 뉴욕의 10 베스트 메뉴' 중 하나로 선정했다.

    오이지는 2022년 플랫아이언 지역으로 레스토랑을 확장 이전했다. 상호도 '오이지미(OijiMi)'로 변경하고, 그 안에 또 하나의 레스토랑 '봄(BOM)'을 2023년 오픈했다. 원래 레스토랑의 이름이었던 '오이지' 끝에 추가된 '미'는 맛(味)과 아름다움(美)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김 셰프는 오래전 유럽 여행 중 방문한 레스토랑들에서 음식의 예쁜 연출, 그리고 멋진 공간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레스토랑에서의 경험과 시간을 즐긴다'는 개념이 없을 때다. 또한 뉴욕의 한식당 인테리어라고 해봐야 그저 하회탈이나 부채, 표주박 정도를 벽에 걸어 놓던 시기였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새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아브로코(AvroKO)'에 의뢰했다. 아브로코는 카네기 멜런 대학교 출신 4명의 파트너가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로, 서울을 비롯해 전 세계 특급호텔과 레스토랑을 고객으로 지니고 있다. 과거 뉴욕의 한국 식당 주인이 당대 최고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인테리어를 한다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이전까지 뉴욕의 한식당 중에 맛과 멋이 수준 높게 결합된 곳도 거의 없었다.

    아브로코와 오랜 디자인 협의 과정을 통해서 김 셰프가 계속 요구한 핵심은 이렇다. 한식의 은은한 무형의 맛을 담기 위한 무형의 멋이 있는 공간 구상. 그렇게 해서 뉴욕을 상징하는 아르데코(Art Deco)와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스타일에 한국적 멋이 결합된 아름다운 공간이 탄생했다. 레스토랑의 군데군데에는 단청을 상징하는 엷은 푸른색(Gentle Green), 매듭의 모양으로 제작된 조명 기구, 조각보나 돌담의 타일 등 대표적인 한국적 모티브가 잘 스며들어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오이지미는 2022년 미국 상업 인테리어디자인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두 가지 상 '골드 키 어워드(Gold Key Awards)'와 '호스피탤리티 디자인 어워드(Hospitality Design Awards)'를 모두 수상했다. "맨해튼에서 한국의 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하는 공간이다"라는 언론의 찬사와 함께였다.

    이런 여정 내내 김세홍 셰프는 좀 더 높은 수준의 한식 포지셔닝을 위해서 고민을 해왔다. 친근한 한식을 제공하되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해석하고자 했다. 하지만 동시에 "퓨전은 혼돈을 가져온다(Fusion leads to Confusion)"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억지로 갖다가 맞춘 모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연출에 집중했다. 즉 맛과 품질, 격식을 갖춘 한식의 정통성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레스토랑 메뉴는 단호박 계란찜, 오징어불고기, 갈낙탕과 같은 단품 요리의 코스식 시간 전개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밥과 국, 반찬이 한 상에 제공되는 공간 전개로 마무리를 한다.

    여기서 김 셰프가 중요시한 것은 재료, 질감, 요리의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일관성이다. 흔히 간과하는 점이지만 실제로 많은 레스토랑의 음식이 어떤 날은 맛있다가 어떤 날은 별로인 경우가 태반이다. 일관성 하나로 세계 최대 레스토랑 체인을 이룬 맥도널드의 교훈처럼, 언제 어디서 먹어도 같은 맛과 품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건 무척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김 셰프는 기본 육수부터 시작해서 준비되는 재료 하나하나까지, 조리 과정 내내 하루에 수백 번 음식의 맛을 본다. 특히 최상의 맛을 위해서 서빙 온도와 타이밍을 맞추는 일은 주방에 붙어서 계속 신경 쓰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다. 여기서 다소 고되더라도 게으르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결심이 중요하다. 이런 노력 없이 일관성을 맞추기는 어렵다. 김 셰프는 "일관성은 프로페셔널 요리사로서의 양심이자 약속"이라는 본인의 신념을 믿고 이를 매일 반복, 실천하고 있다.

    좌석 수 90개의 '오이지미'는 일인당 19만원(145달러), 16석의 '봄'은 43만원(325달러)의 가격이다. 뉴욕의 고급 한식당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매일 200여 명의 손님을 맞이하며, 연 1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자주 언급하듯 훌륭한 레스토랑의 필수 조건은 품질, 창의성, 그리고 일관성이다. 김셰프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팔리는 것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오이지미는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를 받았고, 봄도 올해 미쉐린 원스타를 받았다. 한 명의 셰프가 2년 연속 다른 레스토랑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건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오이지미의 주방은 뉴욕의 한식당 중 가장 호화롭고 아름다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주방의 입구에서 김세홍 셰프는 정교하고 완벽한 음식의 완성을 위한 노력을 한다. 요리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진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코리안 레스토랑으로 간판을 걸 때 묵직하고 가슴 벅찬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기고자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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