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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유럽의 아프리카 과거사 청산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발행일 : 2023.11.15 / 특집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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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수탈했던 나미비아 재건 위해 1조5500억원(2051년까지) 배상

    지난 1일(현지 시각)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옛 독일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해 식민 지배 당시 폭력 행위에 대해 사과했어요. 독일은 1885년부터 1918년까지 33년 동안 탄자니아를 식민 지배했어요. 특히 이날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방문한 탄자니아 남부 손게아 지역은 1905~1907년 '마지마지(Maji Maji) 봉기'가 일어난 곳으로, 독일 군대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탄자니아 주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어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독일인이 이곳에서 여러분의 조상에게 한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어요. 19세기부터 아프리카에 어떤 제국주의 침략이 있었는지, 또 늦었지만 제국주의 국가의 사과와 화해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은 아프리카의 막대한 지하자원을 차지하고 아프리카를 원료 공급지이자 상품 시장으로 삼기 위해 서로 경쟁했어요. 특히 프랑스·영국·독일·벨기에 등이 아프리카 분할을 주도했는데, 이들은 1884~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 어느 곳이든 먼저 점령하는 나라가 그 지역을 차지한다'는 원칙을 정했어요. 아프리카는 20세기 초에 이르면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서유럽 식민지가 돼요.

    열강의 식민 지배는 아프리카인에게 큰 고통이었죠. 강제 동원돼 사탕수수·목화·코코아 등을 재배했고,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귀금속을 캐는 광산에 투입됐어요. 또 16세기부터 있던 노예무역이 이어져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팔려 가기도 했어요. 그러는 가운데서도 아프리카인은 식민 지배에 계속해서 저항했고, 제국주의 국가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어요. 고통은 독립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서구 열강이 다양한 부족과 종교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국경을 정해 현재까지 분쟁 원인이 되고 있어요.

    프랑스에 저항한 알제리 독립 전쟁

    알제리는 1848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 영토가 됐어요. 그 후 100년 넘게 알제리는 참정권도 없이 차별을 당했어요. 식민지를 '본국과 동일하게 대한다'는 명목상 원칙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죠. 독립과 자치를 요구하며 1·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 적극 협조한 알제리인들은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에도 식민 지배에 변화가 없자 독립운동에 나섰어요. 마침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베트남이 프랑스군을 몰아낸 일이 알제리에 큰 자극이 됐죠.

    1954년 11월 1일 알제리군이 프랑스 군사·경찰 시설을 일제히 공격하며 독립 전쟁이 시작됐어요. 하지만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을 중심으로 한 알제리군은 프랑스군을 상대하기엔 병력과 무기 등 전력이 크게 열세였어요. FLN이 게릴라 전술을 펼쳐 프랑스 쪽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알제리도 큰 희생을 치러야 했죠. 1956년 이후 알제리인들은 국제적 관심을 끌기 위해 도심에서 무차별 테러 공격을 시작했어요. 프랑스도 이에 상응해 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자행하며 서로 복수를 이어갔죠.

    알제리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프랑스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를 선택했어요. 1958년 대통령이 된 샤를 드골은 '알제리 독립에 관한 국민 총투표'를 프랑스와 알제리 두 곳에서 실시하고, 알제리 민족해방전선과 협상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1962년 2월 프랑스가 알제리 석유 개발을 위한 특권을 갖는 조건으로 양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했어요. 이어 프랑스와 알제리에서 각각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압도적 지지로 그해 7월 3일 알제리 독립을 선언했어요. 총 50만~60만명이 희생된 독립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죠.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는 현재까지 양국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선 기성 정당이 모두 힘을 쓰지 못하고 거의 무소속에 가까운 신생 정당 후보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됐는데, 마크롱은 후보자 시절 TV 인터뷰에서 "과거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통치에 대해 프랑스가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또 알제리 수도 알제에 있는 알제리 독립운동 순교자 묘역을 방문해 양국 간 '기억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이러한 그의 행보는 당시 경쟁자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았지만, 과거사 화해에 한 걸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독일 치하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시련

    독일은 탄자니아뿐 아니라 1884~1915년 지금의 나미비아 지역을 식민 지배했어요. 독일은 나미비아를 약탈하고 차별 정책을 펴는 등 강압적으로 다스렸어요. 이러한 수탈과 학대에 저항해 1904~1908년 독립운동이 일어났어요. 나미비아 주요 부족이었던 헤레로(오바헤레로)족과 나마족을 중심으로 봉기가 일어났는데, 독일이 이를 진압하며 수만 명이 사망했어요. 헤레로족과 나마족 수천 명이 사막으로 쫓겨 가 굶어 죽기도 했고 나머지는 수용소에 보내져 노예 노동과 영양실조 등으로 목숨을 잃었어요. 이 시기 헤레로족은 80%, 나마족은 50%가 몰살당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후 나미비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편입됐다가 1990년에야 독립했어요.

    이러한 사정으로 독일과 나미비아의 화해는 시간이 지체됐어요. 2015년 독일은 나미비아에 대한 학살을 공식 인정하고 보상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적 화해를 이어가고 있어요. 2018년에는 연구를 목적으로 가져왔던 헤레로족과 나마족 유골 중 남아있는 것을 나미비아에 돌려주었어요. 2021년에는 독일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함께 나미비아의 재건을 위해 앞으로 30년 동안 11억유로(약 1조5500억원)를 배상하기로 했죠. 작년 5월에는 베를린 민속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나미비아 고대 유물을 영구 임대 형식으로 돌려줬어요.

    현재 나미비아 정부가 곧 헤레로족이나 나마족은 아니므로 사과 대상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러한 독일의 행보는 과거 역사와 화해하는 올바른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기고자 :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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