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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6) CJ ENM 영화 총괄 고경범

    신정선 기자

    발행일 : 2023.11.15 / 문화 A2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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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미디어로 美 젊은 세대 공략… "기생충 아직 안 봤어?" 입소문 나더군요

    얼마 전 영화계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최대 배급·투자사인 CJ ENM이 영화 사업을 접는다는 루머였다. 업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마다 "철수 보고서가 윗선에 올라갔다더라" "그만두기로 결정이 났다더라"는 얘기가 오갔다. CJ의 흥행 부진은 '카더라'에 불을 붙였다. 올해 CJ 국내 배급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한 편도 없다. 영화계에서는 "CJ가 신인 발굴을 외면하고 검증된 감독하고만 일하다 쓴맛을 봤다"는 비판도 나왔다. CJ 영화 부문을 총괄하는 고경범(46) 영화사업부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일부 사업 제안을 거절했더니 과도한 해석이 나온 것 같다"며 "그만두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부장은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투자·기획·마케팅 전략가다. 특히 해외 영화 시장에서 국내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다.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며 영화사를 새로 쓴 '기생충'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생충'이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아카데미를 정복하기까지 해외 시장 개척과 배급·마케팅의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칸에서 '기생충'이 상을 받긴 했지만, 아카데미 경쟁에 나서려니 막막했어요. 뚫어본 사람이 국내엔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고민 끝에 결론은 '미국 대형 스튜디오 공식의 반대로 가자'였습니다. 인지도와 자본력으론 경쟁이 안 되니 그들이 무시하던 빈틈을 노려본 거죠."

    아카데미 수상을 위한 홍보 캠페인이 시작되면, 미국 대형 스튜디오들은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할리우드 어느 거리 어느 지점에 광고를 건다는 식이다. 그 자리를 선점하려 대규모 자본을 투하한다. 고 부장은 반대로 갔다. 골리앗이 대놓고 무시하던 다윗의 돌멩이에 나가떨어졌듯, 대형 스튜디오들이 백안시하던 소셜미디어 홍보를 일으켰다. 자본 없이 아이디어만으로도 호소가 가능한 방법이었다.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진 대부분의 백인 중·노년 회원들도 소셜미디어가 불러온 바람(風)에는 민감할 것으로 봤다. 전략은 주효했다. 미국 2030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기생충 바람'은 어느새 힘 있는 아카데미 회원들 사이에서도 "기생충 봤느냐"는 인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 '헤어질 결심'(감독상 박찬욱)과 '브로커'(남우주연상 송강호)를 들고 갔을 때도 고고하다고 자부하는 유럽 영화인들이 하지 않던 전략을 썼다. 칸에서 가장 유명한 마제스틱호텔 벽에 배우 탕웨이 얼굴이 그려진 거대한 포스터를 걸었다. 칸 출품작들이 '상업 영화나 하는 홍보'라고 거들떠보지 않던 방식이었다. 골리앗을 쓰러뜨려본 고 부장은 "그들이 하지 않던 방법이 최고로 효과적"이라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였다.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지나가던 각국 영화인들은 "저 모나리자 그림 같은 포스터는 무슨 영화냐"며 수군거렸다. 관심이 관람으로 이어지고, 어느새 '헤어질 결심'은 '당연히 수상할 작품'으로 굳어져 있었다.

    고 부장은 고려대 재학 시절 5년간 주간지에 영화 평론을 기고하며 작품 보는 눈을 키웠다. 미국 코넬대에서 MBA 학위를 받고 귀국해 IT 회사에 들어갔다. 낮엔 넥타이 맨 IT 맨이었으나 밤이면 '반칙왕'의 송강호처럼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꿈을 꿨다. 2013년 CJ에 입사하며 꿈꾸던 타이거 마스크가 본체가 됐다.

    그는 침체한 영화 시장을 살릴 전략으로 세 유형의 영화를 꼽았다. 극장에서 봐야 하는 '압도적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프랜차이즈화된 '익숙한 영화', 전에 없던 형식을 선보이는 '새로운 영화' 등 3축이다. CJ는 내년에 '압도적 영화'로 '하얼빈'(감독 우민호, 출연 현빈·박정민), '익숙한 영화'로 '베테랑2'(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정해인), '새로운 영화'로 귀엽고 괴기스러운 '2시의 데이트'(감독 이상근, 출연 임윤아·안보현)를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 리더로서 미래 방향은 글로벌 진출 확대와 '넥스트 봉준호&박찬욱 발굴'로 잡고 있다. 고 부장은 "미국 제작사에서 '극한직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곧 리메이크판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봉준호·박찬욱 감독을 이을 차세대 감독 육성 프로젝트도 공들여 추진하고 있다. 고 부장은 "독립영화 감독 중 재능 있는 신인을 주류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차세대 감독이 다시 한번 아카데미 무대에 서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기고자 :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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