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APEC 망신 살라… 샌프란시스코 '노숙·마약 대청소'

    샌프란시스코=오로라 특파원

    발행일 : 2023.11.14 / 국제 A14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노숙자 이동, 거리 치우기 비지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개막한 1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실리콘밸리 빅테크와 스타트업 업계 대형 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리는 이 행사장이 있는 2번가와 5번가, 마켓 및 해리슨가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3m 높이 검은색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다. 평소 개방됐던 행사장 근처 주차 타워 입구엔 '진입 금지'라는 표지판과 함께 경찰이 다가오는 차량들에 손짓으로 'X(금지)'를 만들어 보였다. 이번 회의의 하이라이트인 APEC 정상회의(15~17일)를 앞두고 회의장 주변은 삼엄한 경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코로나 이후 심각해진 마약·범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기업들의 대규모 이탈까지 벌어진 샌프란시스코가 APEC을 부활의 계기로 삼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거리를 정비하고 관광과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어 이른바 '종말의 고리(Doom loop)'에서 빠져나오겠다는 것이다. APEC은 1945년 유엔 국제기구 회의가 열린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 행사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 지도자들의 참석이 예정돼 있다. 1년 만에 개최되는 미·중 대면 정상회담(15일)을 비롯해 각국 정상과 기업인들의 연쇄 회동 등 주목할 만한 행사들이 잇따라 열린다. 샌프란시스코 당국으로서는 절호의 홍보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진보와 다양성의 요람으로 각광받다 마약중독자들과 강도가 들끓는 범죄 도시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 시 당국은 절치부심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행사장에서 불과 1㎞ 거리에 있는 우범 지대 텐더로인에는 노숙자의 텐트와 펜타닐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리를 청소하는 차량이 도로에 물을 뿌리며 오물과 주삿바늘·대마 찌꺼기 등을 씻어내고 있었다. 시 당국은 행사 기간 노숙자 보호소에 침대 수백 개를 추가하며 '거리 청소'에 나섰다. 샌프란시스코 주민 제임스 로치(32)는 "강력한 공권력으로 도시를 정비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라며 "샌프란시스코는 자유를 숭배하는 도시지만, 지금은 더 강력한 통제가 필요한 시점"이라 했다.

    삼엄한 회의장 주변과 달리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글로벌 이벤트를 곁에서 지켜보게 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한창인 1850년대 미국으로 넘어온 1세대 중국 이민자들이 세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중국계 인구만 18만명 이상으로, 전체 도시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저녁이 되자 차이나타운에서는 집집마다 불을 환하게 켜고, 거리에는 홍등이 가득 걸렸다. 중국 전통 사자춤 공연이 펼쳐졌고, 형광색으로 빛나는 용 머리가 수천 인파 위로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거리 양옆에는 중국식 국수, 돼지고기 만두, 계란장 등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했다. 2010년대 이후 경제 쇠퇴 등의 영향으로 중국 명절에나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차이나타운 야시장이 시 주석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부활한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천웨이(34)씨는 "마치 설날처럼 폭죽이 곳곳에서 터졌다"며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자, 취업, 노골적인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 등 미국에서의 삶 전반이 어려워졌는데, 양국이 화해 분위기로 전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 당국은 관광 부흥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동부 재팬타운 근처 웹스터 스트리트 육교를 일본 신사 문을 연상시키는 붉은색으로 칠하며 육교 곳곳에 난잡하게 그려져 있던 낙서를 가렸다. 또 현지 유명 공연인 '디어 샌프란시스코'를 운영하는 클럽 푸가치와 협업해 방문객이 'APEC 2023'이라는 코드를 보여주면 비용의 10%를 할인해주는 등 '문화 부흥'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국제회의 개최 도시에서 으레 열려왔던 각종 단체들의 시위도 예정돼 있어 치안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회의 개막 이틀째인 12일에는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 반자본주의 단체, 극렬 환경 단체 등 100개 이상의 단체로 구성된 'APEC 반대(No to APEC)'연합이 행사장 주변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시위는 각국 정상이 도착하는 15일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빌 스콧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장은 "시위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폭력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필요시 체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고자 : 샌프란시스코=오로라 특파원
    본문자수 : 223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