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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메스' 든 바이털 의사] (2)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센터장

    오주비 기자

    발행일 : 2023.11.14 / 종합 A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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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더 살아갈 아이 생명 지켰다는 기쁨에 하루를 버텨"

    생사가 촌각에 달린 환자를 구하는 의사를 '바이털(생명) 의사'라고 한다.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밤을 새우며 환자를 보는 바이털 의사들을 소개한다.

    류정민(50)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장은 전문의 자격증이 둘인 '더블 보드' 의사다. 국내 소아청소년 전문의 가운데 네 번째다. 수련의(인턴) 시절 소아혈액종양 병동에서 만성 중증 어린이 환자들을 만나면서 소아청소년과로 진로를 결정했고, 아이가 좋아 전문의가 됐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응급실을 만들고 싶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또 땄다. 2010년 서울아산병원에 소아청소년응급센터 창단 멤버로 합류해 지금까지 소아응급실 현장을 지키고 있다.

    류 센터장은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밖에서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병원을 오가며 고생하는 아이들 모습이 안쓰러웠다"며 "아이들이 제일 겁먹는 병원 응급실에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진료받게 해주려고 응급의학과까지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소아응급실 의사로 하루 평균 4~5시간밖에 못 자는 일상을 20년 가까이 살아온 류 센터장은 "돈을 더 줘도 당장 소아 의료 공백을 메울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앞으로 70~80년을 더 살아갈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냈을 때 느끼는 기쁨과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사명감으로 힘겨운 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에서도 소아 응급 분야는 전공의들이 꼽는 대표적 기피 분야다. 의사 부족의 직격탄을 맞은 진료 현장 상황은 어떤가.

    "강동경희대병원, 건국대병원 등 인근 병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소아 응급 환자를 볼 전공의가 없어 공휴일이나 야간에는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로 환자가 더 몰린다. 코로나 전보다 낮에는 60%가량, 밤에는 두 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 새벽에 환자 40~50명을 볼 때도 있다."

    류 센터장은 한 달에 10여 일 이상 당직을 선다. 예전에는 잠을 못 자고 밤에 환자를 봐야 하는 당직 근무가 가장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낮 근무가 더 고되다고 했다. 전공의가 2명밖에 없고, 80시간 근무를 지켜야 해서 전공의들이 밤에만 출근하다 보니 낮에는 교수와 전임의가 대부분 혼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복력 좋아 제대로 처치하면 금방 호전

    ―퇴근할 때쯤이면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했는데.

    "소아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아픈 아이들이지만, 증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보호자다. 왜 아프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자세히 설명하려면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진료를 마치고 퇴근할 때면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쉬기도 한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나.

    "솔직히 많이 했다. 계속 밀려오는 환자들을 혼자 보고 있는데, 보호자들이 '우리 아이를 왜 빨리 안 봐주느냐'며 화를 내고 간호사들을 다그칠 때 정신적으로 힘들다.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밤에 잠 못 자고 일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도 한다. 끼니 거르는 건 일상이다. 명색이 의사인데, 건강검진 못 한 지 5년 가까이 됐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많이 고민했다."

    ―동료 소아응급실 의사들은 어떤가.

    "만나보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몸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겠다' 같은 얘기다. 처지가 같은 소아응급실 의사가 아니면 이런 사정을 누가 이해하겠나."

    ―그럼에도 소아응급실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명감 때문이다. 응급실을 찾은 소아 환자를 정확하게 진찰하고 신속하게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다. 특히 아이들을 살리는 의사라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귀하고 소중하지만, 앞으로 70~80년 긴 미래를 살아갈 아이의 생명을 지켜냈을 때 느끼는 기쁨은 더할 수 없이 크다.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사명감으로 힘겨운 하루를 버틴다.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사회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회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소아 응급 의사로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소아 응급 의사가 필요한 이유는?

    "아이들은 성인보다 장기, 혈관 등이 작다. 또 조직이 약해 손상 등 위험도 크다. 그렇다 보니 소아 응급 환자를 많이 받아 본 의사가 더 잘 진료할 수 있다. 성인보다 신체가 작은 만큼 아이들에게 맞는 시술 장비와 시설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성인 환자와 다른 소아 청소년 환자의 특징은.

    "아이들은 성인 환자와 달리 회복력이 좋다. 소아응급실을 찾는 아이들은 감기, 열 같은 경증부터 호흡 정지, 패혈성 쇼크, 사고에 따른 외상 등 중증 환자까지 다양하다. 중증 외상처럼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사가 제대로 처치하면 금방 좋아지는 걸 볼 수 있다. 지난 5월 급성 폐쇄성 후두염으로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인 5세 아이가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숨진 일이 있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우리 응급실에 많이 오는데, 곧바로 치료하면 한두 시간 만에 상태가 호전된다."

    의료 소송 배상액 성인의 5~10배

    ―소아 응급 분야를 포함,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이 심각하다. 의료 공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보상 대책이 정말 파격적이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전공의보다 연봉을 3배 더 주는 것은 어떨까. 요즘 젊은 의대생과 인턴들은 과거 의사들과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 과거에는 의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게 당연했고, 많이 일해서 돈 버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젊은 의사들은 자신의 노력과 노동에 대한 적정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교육받은 세대다. 그런데 소아청소년과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진료비로만 수익을 내야 하는데 그마저도 낮다. 소아 전문 응급센터 등은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에 사정이 좀 낫지만, 규모가 작은 병원은 야간에 소아 응급 환자를 받으면 의사가 환자 한 명당 2만원도 못 받는 게 현실이다."

    ―낮은 수가를 인상하면 소청과 의사 부족이 해결되나.

    "의료 소송 부담도 소아청소년과 선택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의료 소송 배상액도 소아 청소년은 기대 여명(餘命)이 길어 성인보다 5~10배 더 나온다. 의사 개인이 다 감당해야 한다. 의사들이 의료 소송에 내몰리고, 높은 배상액을 물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 제대로 진료를 볼 수 없다. 잘못이 없으면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더 많은 재정 지원에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도 있다.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가 적지 않지만,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영역은 재정 지원이 제대로 안 돼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내는 보험료가 정말 시급한 의료 영역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건보 재정을 샅샅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증 환자와 병을 다루는 쪽에 지원을 더 해주는 방식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류정민 센터장은

    1998년 중앙대 의대를 졸업했다. 2001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해 2006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2008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2010년 12월 서울아산병원이 소아청소년응급센터를 열 때 합류해 지금까지 소아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2021년부터 소아전문응급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래픽]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
    기고자 :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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