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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오스틴 리의 작품 세계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발행일 : 2023.11.13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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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에 스케치하면 3D 프린터가 입체적으로 그려요

    모든 사람이 주변 환경에 크게 또는 작게 반응하며 살죠. 하지만 미술가는 누구보다 더 예리한 더듬이를 갖고 세상에 반응합니다. 예로부터 미술 작품은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비추고, 또 마음속에 쌓이는 경험을 내비치는 거울 역할을 해왔지요. 기술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눈으로 보는 풍경이 달라지면 미술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9세기 중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를 예로 들어 볼까요? 당시 과학기술 발달로 튜브로 짜서 쓰는 물감이 개발됐습니다. 덕분에 화가들은 바람에 물감 가루가 날아갈 염려가 없어져 그림 도구를 갖고 야외로 나갈 수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모네는 작업실에서 보던 물감 색과 야외에서 직접 보는 빛의 색이 같지 않다는 걸 체감했어요. 팔레트 위에서 여러 색의 물감을 섞으면 점점 불투명해질 뿐, 하늘 아래 빛이 스며든 투명한 빛깔을 낼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모네는 튜브에서 붓으로 바로 물감을 짜서 캔버스에 점을 찍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빛의 투명함을 살리기 위해서였죠. 물감으로 찍은 점들이 팔레트가 아닌 우리 눈에서 섞이도록 한 겁니다.

    디지털 이미지를 현실로 옮기려면

    오늘날에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환한 원색 이미지가 우리가 겪는 경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디지털 이미지는 빛의 삼원색 'RGB', 즉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 세 가지 광원을 기본으로 서로 혼합돼 여러 빛깔을 냅니다. 그러니 디지털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길 때는 팔레트에 물감을 섞어 붓질하는 기존 방법만으로는 비슷한 효과를 내기 힘들겠죠.

    2020년부터 2년 넘게 지속된 팬데믹 시기 동안 직접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집에서 인터넷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팬데믹 시기에 느낀 감정들은 디지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미술 재료나 기법만으로는 생생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팬데믹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 감정을 이야기해 보는 전시 '오스틴 리: 패싱 타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스틴 리(1983~)는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가로, 디지털 기술 방식으로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감정을 이미지로 제작해 보여줍니다. 디지털 드로잉으로 이미지를 구상하고, 이를 캔버스에 에어브러시(스프레이)로 그리거나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조각으로 만들죠. 이렇게 가상공간 속 이미지를 현실에서 재현합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몇 점을 살펴볼게요.

    캔버스에 그린 〈작품1〉을 보세요. 이 작품은 권투 경기에서 패배한 한 권투 선수가 경기장 줄에 위태롭게 기댄 모습을 보여줍니다. 빨간 권투 장갑을 낀 채 양손을 머리 위로 든 권투 선수는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눈물이 넘쳐 고인 물웅덩이에서 허우적대는 듯합니다. 슬픔과 좌절의 감정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게 된 청소년 시절부터 오스틴 리에게는 컴퓨터와 키보드가 마치 종이와 연필처럼 일상의 일부였고, 점차 컴퓨터를 미술 창작을 위한 도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화면이 발산하는 빛에서 색의 영감을 얻었어요. 하지만 이를 그림으로 옮기려고 할 때, 물감이 그 광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했죠. 그래서 영롱한 빛깔을 나타내기 위해 RGB 원색을 주로 썼어요. 그리고 붓 대신 에어브러시로 물감을 뿜어내는 방법을 썼습니다. 손으로 그린 것 같은 붓질의 느낌을 없애고 매끈한 디지털 이미지처럼 보이는 효과를 냈죠.

    마티스의 '춤' 재해석해

    〈작품2〉
    는 슬픔에서 조금 벗어나 자기 성찰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은 분수조각(噴水彫刻)이에요. 양팔을 벌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인물은 고개를 위로 올린 채 물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붓과 팔레트를 양손에 들고 있는 걸로 짐작하건대, 이 사람은 화가인가 봐요.

    오스틴 리는 뿜어져 나온 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만들었어요. 물이 솟아오르고 떨어지고 흘러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결국엔 모두 다 지나가고 흘러가리'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답니다. 디지털 화면 속 이미지를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조각 역시 손으로 재료를 깎거나 붙여 만들지 않고 3D 프린터를 활용했어요.

    〈작품3〉은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한 듯한 분위기의 그림이에요. 초록색으로 굽이치는 언덕 위에서 분홍색 사람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있어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강렬한 원색으로 유명한 20세기 초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그림 '춤'이 떠오르게 하죠. 오스틴 리가 마티스의 '춤'을 본인 스타일로 그려낸 것입니다.

    〈작품4〉는 애니메이션 영상인데, 눈·코·입이 달린 꽃들이 언덕 위를 가득 메우고 있어요. 화면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에서 태양이 고개를 내밀면, 사람처럼 보이는 꽃들이 수줍은 동작이지만 경쾌하게 춤을 춥니다. 영상 속 풍경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줘요. 춤을 추는 꽃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팬데믹처럼 살다 보면 때로는 답답하고 울적할 때가 오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의미 아닐까요.
    기고자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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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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