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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백인 트로트' 정상에 깃발 꽂은 흑인여성

    정지섭 기자

    발행일 : 2023.11.13 / 국제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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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컨트리 음악상 트레이시 채프먼… 미네소타주 시장엔 27세 무슬림

    전례 없는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 두 명이 잇따라 이뤄낸 '아메리칸 드림'이 화제다. 보수적인 백인들만의 음악으로 인식돼온 컨트리 음악계에서 흑인 음악인이 이례적으로 큰 상을 받았다. 열 살 때 부모 손을 잡고 난민으로 정착한 소말리아 출신 20대 청년은 인구 5만명을 책임지는 시장으로 선출됐다.

    8일(현지 시각) 테네시주 내슈빌 브리지스톤 아레나에서 열린 57회 CMA(컨트리 음악 협회) 어워즈 시상식. '올해의 노래' 수상자로 '패스트 카'를 작곡한 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트레이시 채프먼(59)의 이름이 불리자 환호가 쏟아졌다. "아쉽게도 사정상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회자 코멘트에도 수천 청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CMA 어워즈는 컨트리 음악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존 덴버·케니 로저스·돌리 파튼·테일러 스위프트 등 월드 팝스타들을 대거 배출했다. '올해의 노래'는 '올해의 엔터테이너' '올해의 앨범' '올해의 싱글' 등과 함께 CMA 어워즈의 주요 부문으로 꼽힌다. 흑인 작곡가가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 수상한 건 채프먼이 처음이다.

    '패스트 카'는 신곡이 아니다. 채프먼이 스물네 살이던 1988년 발표한 것을 백인 남성 가수 루크 콤스(33)가 올 초 컨트리 스타일로 리메이크해 발표했다. 이 노래가 빌보드 '핫 100 차트' 6위까지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면서 올해의 노래 후보에 올랐다. 채프먼은 사회자가 대독한 소감에서 "이 노래가 35년 만에 다시 인정받을 수 있게 돼 영광이다. 멋지게 불러준 콤스, 노래를 사랑해준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원곡 '패스트 카'는 통기타와 드럼으로 악기 편성을 최소화한 포크송이다. 밝지도 신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화자(話者)는 어머니와 갈라선 뒤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로 일하면서도 막연히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심정을 음울하게 노래한다. 이 노래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과정은 극적이었다. 1988년 6월 영미권 팝스타들이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개최한 넬슨 만델라 70세 생일 축하 콘서트. 스티비 원더가 장비에 문제가 있다며 무대를 돌연 떠나자 당시 무명 신인이었던 채프먼이 '땜빵'으로 무대에 올라 이 노래를 불렀다. 이후 인기를 얻은 채프먼은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신인·최우수 여성 팝 보컬·최우수 컨템퍼러리 포크 등 3개 부문 상을 받았다.

    흑인 여성이 쓰고 부른 포크송은 35년 뒤 컨트리로 새롭게 편곡됐고, 33세의 백인 남자 가수가 원곡보다는 다소 거친 창법으로 불렀다. 이런 방식으로 리메이크되는 것도, 히트하는 것도 미국 대중음악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고된 일상에 얽매여 희망을 찾지 못하는 1980년대 흑인 여성의 자조가, 21세기 미국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전락한 저학력·저소득 백인들에게도 동질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콤스는 컨트리 리메이크 버전 '패스트 카'로 '올해의 싱글'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는 수상 자리에서 채프먼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하며 감사를 전했다. 또 "(패스트 카는)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사랑하는 노래다. 리메이크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채프먼은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인권과 차별 금지 등 이슈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소셜테이너'로 유명하다. 그는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서 국가 훈장을 받았다.

    한편 7일(현지 시각) 치른 미네소타주 도시 세인트 루이스 파크 시장 선거에서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 무슬림인 나디아 모하메드(27) 후보가 당선됐다. 이로써 미네소타주 역사상 첫 흑인 시장이자 미 역사상 첫 소말리아계 선출직 시장이 나왔다. 세인트 루이스 파크는 미네소타주 주도 미니애폴리스 근교에 있는 인구 5만 도시다. 그는 10세 때 부모와 함께 소말리아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한 뒤 이곳에서 초·중·고교와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 시청의 다양성 담당자로 채용된 뒤 23세였던 2019년에 시 역사상 최연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은행가 출신인 백인 남성 데일 앤더슨에게 17%포인트 차이로 크게 이겼다. 모하메드가 앞서 3선 도전을 포기한 현직 제이크 스파노 시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미네소타주가 진보 성향이 다분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례적 압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당선 직후 "역대 시장 초상화에 포함될 내 얼굴을 보게 될 무슬림·흑인·이민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모하메드는 최우선 공약으로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늘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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