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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 반성합니다"… 獨, 역대 최대 추모행사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발행일 : 2023.11.11 / 국제 A1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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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의 밤' 85주기… 전쟁 중 추모의 날 맞아 참가자 크게 늘어

    9일 오후 5시(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지역에 있는 그루네발트역의 한 승강장. 과거 나치 독일 당시에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는 기차가 출발했던 이곳에 독일 시민 100여 명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85년 전인 1938년 11월 9~10일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곳곳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프랑스 파리 주재 독일 외교관이 유대인에게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나치 당원 등이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회당에 불을 지르고 유대인 가게를 약탈한 사건이다. 당시 유대인 상점의 깨진 유리창 파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수정(水晶)처럼 반짝였다고 '수정의 밤' 또는 '깨진 유리의 밤'으로 불린다. 이 사건으로 유대인 약 1300명이 숨졌고, 강제 수용소로 추방된 유대인은 3만명에 이른다.

    올해 '수정의 밤' 추모 행사에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이가 몰렸다. 극우 정당의 득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맞은 행사여서 남다른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루네발트역에서 만난 하이케(66)씨는 "작년에는 못 왔지만 올해는 꼭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독일 내 유대인들이 다시 위협받는 일이 생기고 있다. 그들에 대한 지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1월 9일은 독일 장벽이 무너진 날(1989년)이자 독일이 군주제에서 벗어나 공화국을 선포한 날(1918년)인데, 올해는 유대인을 추모하는 '수정의 밤'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날 독일 중앙유대교협회가 베를린의 베시온 회당에서 연 유대인 추모 행사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 하마스에 납치된 희생자 가족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이 참석했다. 베시온 회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괴한으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당한 곳이다. 이날 유대교 남성 모자(키파)를 쓰고 연설에 나선 숄츠 총리는 "2023년에 다시금 다윗의 별이 더럽혀지고, 하마스의 유대인 학살이 광장에서 축하받는다면 이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반(反)유대주의가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유대인 박해 등 과거의 잘못은) 이제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은 당장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 주최로 베를린 서쪽 거리에서 열린 추모 걷기 대회에는 경찰 추산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거리는 과거 유대인 상점 100여 곳이 있던 자리다. 하이너 코흐 가톨릭교회 베를린 대주교는 "이번 행사는 베를린 유대인들과 연대 표시"라고 했다. 추모 걷기 대회가 끝나는 지점인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에서는 베를린에서 나치 독일에 희생된 유대인 5만5696명의 이름이 하루 종일 낭독됐다.

    '독일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문(門)에는 이스라엘 국기 색인 흰색과 파란색 조명이 비춰졌고, 유대인 박해 같은 과오(過誤)가 결코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는 의미로 '이제 다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띄워졌다. 이외에도 리히텐베르크, 템펠호프, 호엔쇤하우젠 등 베를린에서만 10여 개의 추모 행사가 각각 열렸다. 베를린 시민 율리안(38)씨는 "거리 곳곳에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e·걸림돌) 명판마다 촛불이 놓여 있는 것을 봐도 올해는 추모 열기가 유독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함부르크, 뮌헨, 쾰른, 본 등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추모 행사가 열렸다. 독일의 지역 언론들은 "올해 열린 '수정의 밤' 추모 행사에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다"고 전했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

    1938년 11월 9~10일 독일 전역에서 나치 당원 등이 유대인 회당에 불을 지르고 유대인 상점을 약탈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 가게의 깨진 유리창 파편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수정(水晶)처럼 반짝였다고 '수정의 밤' 또는 '깨진 유리의 밤'으로 부른다. 프랑스 파리 주재 독일 외교관이 유대인에게 피살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났다. 독일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수정의 밤' 사건 때 목숨을 잃은 유대인이 약 1300명이고, 강제수용소로 추방된 유대인도 3만명에 달한다.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폭력과 축출이 본격화된 계기가 됐다.
    기고자 :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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