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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실패가 예정된 존경스러운 정치인

    양상훈 주필

    발행일 : 2023.11.09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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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29세에 정치의 꿈을 품었다. 첫 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지만 그는 정치에서 나쁜 것부터 배웠다. 다음 선거에서 그가 후원자들에게 모금한 선거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지율이 폭락하자 놀라운 작전을 세운다.

    그는 상대 후보가 지역에 폐기물 저장소를 유치하려 한다는 가짜 뉴스로 역공을 폈다. 상대 후보가 적성국과 관련이 있다는 괴담 TV 광고도 했다. 또다시 패한 그는 타락한 저질 정치인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젊음을 순수함이나 패기의 원천이 아니라 천박한 상품으로 팔다가 파산한 가망 없는 청년이었다.

    사익을 취하고, 거짓말을 하고, 함부로 남을 음해하다 실패한 정치인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대부분은 사익과 거짓, 음해를 더 대담하게 하며 자기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예외적인 경우였다.

    정치를 떠났던 그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평생 좌우명이 될 선언을 했다. 그는 '정치인은 기본적 품위를 가져야 하며, 선거를 통해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점에서 나는 죄인이기에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며 '만약 다시 공직에 도전한다면 네거티브(상대에 대한 마구잡이 공격)를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10년 만에 다시 출마해 큰 표 차 승리를 거뒀다. 언론은 그의 선거운동을 '끈질긴' 반(反)네거티브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섯 번 연이은 선거에서 이 원칙을 한 번도 버리지 않았고 모두 승리했다. 결국 대통령에 이은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 소속 당내에서 그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았다. 평소 "나는 당원이기에 앞서 보수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이기에 앞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해온 그는 극성 당원들에겐 그리 탐탁지 않은 인물이었다.

    '개딸'과 같은 극성 당원들의 그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극성 당원들을 배신했을지는 몰라도 나라를 구한 일이었다.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당은 패했고 그는 직책상 다른 당 대통령 당선자를 의회에서 법적으로 확정하는 절차를 주재해야 했다. 낙선한 대통령은 그에게 이 절차를 진행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사실상 모반을 일으켜 나라를 뒤엎자는 유혹이었다.

    그가 이를 거부하자 폭도로 변한 극성 당원들이 그를 교수형에 처하겠다며 의회를 점거하고 그를 수색했다. 의원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신했지만 그는 아내, 딸과 함께 있었음에도 경호원들이 거의 강요할 때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죽여라" 하는 폭도들 외침을 지척에서 들었다. 그래도 폭도들이 진압되자 그는 새 대통령 확정 절차를 끝마쳤다. 그가 없었고, 그가 한 일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그날 무너졌을 수 있었다. '위태로운 국가가 옳은 일을 해 줄 단 한 사람을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결코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그는 양다리를 걸치고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 당의 급진성에 대해선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헌법 중 택일하라면 헌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필자는 그만큼 대통령 자격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대중 정치 시대에서 이 사람의 품위와 초당적 원칙, 애국심 등의 덕목은 더 이상 인기를 끄는 요소가 아니다. 그는 2024년 다음 대통령 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 출마했지만 일찌감치 경선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대중의 지지는 그가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모반을 압박하고 유혹한 전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대중 민주주의, 인터넷 민주주의가 원하는 것은 품위와 원칙이 아니라 선동과 거짓, 선정적 쇼맨십, 포퓰리즘이다. 이 시대에 대통령직으로 가는 줄이 있다면 그와 같은 사람들의 위치는 맨 끝일 것이다. 그가 경선 포기를 선언했을 때 한 언론인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손가락으로 마법처럼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을 고를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제48대 부통령 마이크 펜스(64)다. 젊었을 때의 '선동과 거짓'의 과오를 평생 교훈으로 삼아 반성하며 언제나 '품위'를 강조하고 실천했다. 대선 경선을 포기하면서도 국민에게 "품위 있는 대통령을 뽑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품위 없고 극도로 무책임한 거짓말쟁이가 다시 인기 선두에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한국 사정도 똑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우리 정치계에 품위 있고 원칙 있는 인물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대중의 관심 밖에 머물렀다. 양쪽으로 갈라진 대중은 상대를 죽이고 짓밟아줄 것처럼 보이는 인물을 선호한다. 괜찮은 사람들도 이 정치판에서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 스스로를 그렇게 망가뜨리곤 했다. 한국의 마이크 펜스들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기고자 : 양상훈 주필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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