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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맛과 섬] (163) 제주 구엄리 돌소금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발행일 : 2023.11.08 / 여론/독자 A3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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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소금이 귀한 섬이다. 그 이유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갯벌이 귀하다. 또 해안의 바닷물은 곳곳에서 솟는 용천수로 싱겁다. 게다가 소금을 굽기 위해서 꼭 필요한 땔감도 부족하다는 것을 꼽는다. 이러한 제주의 환경을 잘 보여주는 소금 생산 방식이 구엄리 '돌소금'이다. 구엄리는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해안 마을이다.

    제주시에서는 2010년대 초반 돌소금밭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고 했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돌소금밭이 마을 발전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전통 소금을 재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 이제 안내판의 글씨도 지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전통 소금 재현에 큰 역할을 했던 조두헌(87) 삼촌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이어 돌소금밭을 안내할 사람이 없다. 재현 행사는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도 못한다.

    돌소금밭의 역사는 16세기로 올라간다. 당시 제주목사로 부임한 강여가 제염법을 보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 앞 해안도로와 주차장까지 포함해 약 1500평에 이르는 넓고 평평한 암반이 돌염전이었다. 이런 지형을 제주에서는 빌레라고 부른다. 그래서 소금 빌레라고도 한다. 30~40여 가구가 바닷물이 많이 드는 날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금 빌레에 바닷물을 떠다 붓고, 햇볕에 증발을 시켜 소금을 만들었다. 어느 날은 짠물을 모아 솥에 넣고 삶기도 했다. 이렇게 돌소금을 생산하는 일이나 이웃 장전, 소길, 수산 등까지 등에 지고 가서 판매하는 일은 모두 여성이 감당했다. 물질도 해야 하고, 밭일도 해야 하고, 부엌일도 해야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일주일, 좋지 않으면 스무 날도 더 기다려야 했다. 소금을 팔고 조와 메밀 등 곡식과 바꿔왔다. 1950년대 중반 6·25전쟁 이후 육지와 제주를 잇는 뱃길이 생겨나고, 천일염전에서 생산한 값싼 소금이 들어오면서 돌소금 생산도 멈췄다. 오랜만에 부축을 받고 돌염전에 나온 조씨는 소금 생산을 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경치가 좋아 찾는 여행객이 많아 체험이나 돌소금을 마을 상품으로 팔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기고자 :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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