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朝鮮칼럼]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발행일 : 2023.11.08 / 여론/독자 A38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동물도 죽음을 애도할까? 미국의 행동생태학자이자 코끼리 전문가인 케이틀린 오코넬에 따르면 동물도 장례를 치른다.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가 안락사되자 두 친구 코끼리가 조용히 죽은 친구를 방문하고 주기적으로 죽은 친구의 몸에 흙을 뿌려 덮어주었다는 것이다. 침팬지 역시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침팬지 위로 다른 침팬지들이 나뭇가지를 꺾어 떨어뜨렸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고, 시신을 지키며, 매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애도는 특별하다. 죽은 이를 향한 살아있는 이들의 배웅은 일회성 행동에서 멈추지 않는다. 고대 로마인들에게도 '경이로운 고대 유적 관광지'였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떠올려 보자. 왕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그 부활을 기다리기 위해 사막에 그런 엄청난 구조물을 세웠다. 인류 문명은 어찌 보면 죽음 앞의 성찰과 애도에서 탄생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애도의 영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 들기 때문이다. 특히 그 죽음이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 어떤 재난이나 재앙에서 비롯했을 경우, 같은 종류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한다. 진정한 애도는 과거에서 시작해 미래로 향한다.

    미국 맨해튼에 있는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서 우리는 가장 문명적인 애도를 목격할 수 있다. 화창하고 평화로운 화요일 아침,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 알카에다의 조직원 19명이 민항기 네 편을 납치했다. 그중 하나는 불시착했고, 한 대는 미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충돌했으며, 두 대는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에 차례로 부딪쳤다. 3000명에 가까운 이가 목숨을 잃고 2만5000명 이상 부상자를 낳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었다.

    이 상처를 어떻게 회고하며 극복할 것인가? 테러 직후부터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결국 오랜 숙고 끝에 테러 10주년에 맞춰 9·11 메모리얼 박물관이 개장했다. 이스라엘 특공대 출신의 젊은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는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검고 거대한 인공 폭포 두 곳을 지었다. 엎드려 울기 적합한 각도의 난간에 생전 관계를 고려하여 사망자들 이름을 배치했다. 섬세하게 방울져 떨어지는 물은 마치 끝없는 슬픔을 상징하듯 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깊게 파인 구덩이로 빨려 들어간다. '부재(不在)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중하고 엄숙한 애도 공간이다.

    9·11 기념 공간의 특별함은 메모리얼과 박물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세계무역센터 부지를 다시 개발하여 만들어낸 상업 공간까지도 추모의 뜻에 헌정되어 있다. 무려 12개의 지하철 노선과 기차가 지나가는 환승역이자 쇼핑센터인 오큘러스가 바로 그곳이다. 검은 인공 폭포 내지는 호수 앞에서, 슬픔을 딛고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펴는 흰 새 모습을 한 복합 지하 쇼핑몰이다.

    상업 공간으로 추모를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직접 보면 말이 된다. 눈물이 흐르는 검은 폭포 옆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을 형상화하는 하얀 새가 앉아 있다. 오큘러스는 애플스토어를 비롯해 온갖 럭셔리 매장이 자리 잡은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상업 공간 중 하나다. 하지만 추모를 위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분리될 수 없듯 애도와 일상도 나누어질 수 없다. 9·11을 겪은 뉴욕은 그 당연한 진리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세월호 방명록에 쓴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분명한 건 특정 정당과 이념 세력의 선동 속에서, 대형 참사 앞에 누군가를 단죄해야 '정의'라고 믿는 이들의 그릇된 신념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신속 제정하자며 밀어붙이는 민주당을 바라보는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뉴욕은 9·11 테러를 기억하며 미래를 기약한다. 가장 깊은 슬픔과 가장 높은 이상을 함께 말한다. 반면 우리는 참사의 기억을 들이대며 정쟁 도구로 삼으려 드는 비열한 태도가 정치권에서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3년상을 치를지 5년상을 해야 할지 싸웠던 조선 시대 당파 싸움이 차라리 고상하게 보일 지경이다. 단언컨대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우리는 죽음과 문명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기고자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13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