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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스크린은 옛말… 벽면에 360도 CG(컴퓨터 그래픽) 띄우는 요즘 촬영장

    백수진 기자

    발행일 : 2023.11.08 / 문화 A2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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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VP 스튜디오' 가보니

    경기도 파주에 있는 CJ ENM의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가상 제작) 스테이지. 지난달 23일 촬영이 한창이었다. 7m 높이의 거대한 문이 열리자 초대형 LED가 뿜어내는 열기와 함께 화성의 사막 지대가 펼쳐졌다. 360도 벽면과 천장을 둘러싼 초고해상도 LED 화면 속엔 CG(Computer Graphics)로 구현한 화성의 붉은 모래 언덕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모래와 암석을 깔고, 스태프들이 송풍기로 먼지바람을 일으키자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화성 세트장이 완성됐다.

    버추얼 프로덕션(VP)은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만든 가상 환경에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LED 화면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 필요한 배경을 틀어놓고 촬영할 수 있는 VP 스튜디오가 늘고 있다. VP 기술은 제작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바꿀 '게임 체인저'라 부른다.

    CJ ENM은 VP 스튜디오의 촬영 현장을 처음 공개했다. 이곳의 LED는 지름 20m, 높이 7.3m 이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 카메라 각도에 관계없이 자연스러운 화면을 담아내려고 고도의 기술을 적용했다. 우주복을 입은 배우를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면, 배우 뒤편 화면도 그에 맞게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조금씩 변했다. 컴퓨터가 배우와 카메라 사이의 원근감을 계산해 실시간으로 배경 화면을 조정한다.

    안희수 VP 프로듀서는 "배우가 초록색 스크린 앞에서 허공을 보며 연기한 종전 방식과 달리 배우와 제작진이 완성된 화면을 보면서 촬영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시간으로 결과물을 보고 화면 속 지형지물을 옮기거나 색깔을 바꾸는 등 배경 수정도 가능하다.

    또 다른 강점은 제작 효율이다. 클릭 몇 번이면 전 세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공항·지하철처럼 허가받기 어려운 장소를 섭외하느라 씨름할 필요 없고, CG를 입히는 후반 작업 시간도 단축 가능하다. 세트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달 말 공개하는 이성민 주연의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의 차량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손님으로 연쇄 살인마를 태운 택시 기사 이야기로 차 안에서 찍는 장면이 대부분. 도로 통제나 날씨 걱정할 필요 없이 대사에 맞게 서울부터 지방까지 외부 배경을 바꿔가며 촬영했다. '운수 오진 날' 제작진은 "도로에서 견인차에 차를 싣고 촬영하면 카메라 설치에 제약이 있는데, VP 스테이지에선 장비를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연출이 가능했다"면서 "촬영 시간도 20~30% 줄었다"고 했다.

    VP 기술은 2019년 미국 드라마 '만달로리안'에서 처음 사용돼 주목받았다. 독일 드라마 '1899'는 코로나 유행으로 제작이 무산될 뻔했다가 VP 스튜디오를 이용해 유럽 전역과 아시아가 배경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VP 시장 규모는 18억달러로 추산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7.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VP 기술을 이용한 콘텐츠가 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를 시작으로, 영화 '서울 대작전' '더 문', 드라마 '검은 태양' 등을 VP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한번 배경을 제작해두면 예능이나 광고,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에도 활용할 수 있다. 국내에선 CJ ENM과 덱스터 스튜디오, 비브 스튜디오스 등이 VP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설비 구축과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들고, 현실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햇빛이 쨍한 한낮 날씨는 아직 LED로 구현하기 어렵다. 신기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도전을 주저하는 분위기도 걸림돌이다. 안희수 프로듀서는 "인프라 구축 단계에선 할리우드와 견줘도 밀리지 않았는데, 프로젝트 경험이 적다 보니 기술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제작비를 약 5~10% 줄이는 정도지만, 시스템이 정착되면 더 큰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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