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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27) 드라마 작가 이환경

    김민정 기자

    발행일 : 2023.11.07 / 문화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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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 근육 파열돼 구술한 '용의 눈물' 대본… 신문지 덮고 자던 시절 있어 나왔다

    '용의 눈물'(1996~1998·159부작), '태조 왕건'(2000~2002·200부작), '야인시대'(2002~2003·124부작)는 국내 대하 드라마 '3대작'으로 꼽힌다. 방대한 분량에 최고 시청률이 40~60%에 달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관심법으로 보았다' '사딸라' 같은 명대사와 드라마 '짤'들이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 유행한다. 세 작품 극본은 한 사람 손에서 탄생했다. 학력이라고는 '국민학교' 졸업장뿐인 이환경(73) 작가다. 그는 1980년대 'TV문학관' '전설의 고향' '무풍지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제국의 아침' '영웅시대' '연개소문' '파천무' '무신' 등도 집필했다. 안방 극장의 TV 수상기 너머에서 오랜 시간 시청자와 함께했다. 이환경 작가를 지난 1일 그의 남양주 작업실에서 만났다. 대본 수정 요구 등에 까다롭기로 소문났지만 조용하고 소탈했다. 찹쌀떡과 쑥떡을 직접 접시에 담아놓고 기자를 맞았다. 전후 혼란통의 밑바닥을 살아낸 그의 삶이 드라마였다.

    한글본 '이조실록' 보고 극본 써

    그는 1950년 6월 20일에 태어났다. 닷새 뒤 6·25가 터지자 인천에 살던 가족들은 산모와 핏덩이를 데리고 걸어서 피란길에 올랐다고 한다. 수원에 닿았을 무렵 어머니는 걸을 수 없었고 인민군이 점령한 고향으로 돌아갔다. 철도청 직원이었던 아버지는 협박에 못 이겨 인민군에 복무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짜 빨갱이'였어요. 장기수로 10여 년 복역한 뒤엔 집에서 멀리 떠나 보일러공 일을 하셨죠. 우리 가족은 연좌제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집엔 형사들이 수시로 찾아왔고, 먹을 것도 없었다. 연탄 공장 밖으로 바람에 날려 쌓인 연탄 가루를 주워 담으러 가면 근처 주안역에서 동년배 친구들이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에 견딜 수 없어 국민학교까지만 다닌 뒤 관뒀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형들은 나중에 출세 길이 막히자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쟁 직전 태어난 내가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고통이 어려있었다.

    평생 '빨갱이' 낙인을 피하기 위해 애썼지만, 그가 가장 먼저 자신의 보물로 꼽은 물건은 북한에서 펴낸 400권짜리 '이조실록'(조선왕조실록)이었다. 1990년대 국내 출판사가 판권을 사다 출판했다. "제 출세작인 '용의 눈물'을 쓸 때, 역사 고증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성실히 독파했던 책입니다.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됐지요." 그는 "당시 국내에는 쉽게 풀어진 한글본이 없어 꼭 필요했던 책"이라며 "행간을 읽기 위해 국내 논문들을 참고해 극본을 썼다"고 했다.

    'TV문학관' 쓰며 본격 드라마 작가로

    국민학교 사친회비를 못 내 망신당하는 날이 많았지만, 국어 시간엔 우등생이었다. 그의 글은 우수작으로 교실 뒤편에 붙곤 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일한 희망은 글재주뿐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작가의 꿈을 갖게 된 건 시인이었던 친구 아버지 덕분. "친구 집 화장실에 갔는데 원고지를 휴지로 쓰고 있더라고요. 거기 적힌 글을 보고 나도 쓰고 싶어졌어요. 친구 아버지가 책도 빌려주고 글도 써오게 했죠."

    10대 후반부터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고물상에서 일하던 중 '드라마 작법책'을 발견해 읽게 된 뒤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다. 중국집 배달, 공사 현장 노동 등을 하며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가 걸신 들린 듯 책을 잔뜩 사 봤다. '통신 강의록'과 국어사전으로 공부도 했다고 한다. 암자와 여인숙, 노숙을 전전하며 준비한 끝에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된다. 하지만 극본 몇 편을 쓴 뒤 일은 끊겼고, 좌절에서 그를 건져준 것이 KBS에 신설된 'TV문학관'이었다. "문학 전집을 달달 읽어댔던 제게는 기회였죠. '갯바람' 편으로 시작해 반응이 좋아 20여 편을 썼습니다." 그는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1975년에 출간된 20권짜리 한국단편문학전집을 보물로 꼽았다. "이게 제 밑천이었죠. 중요한 드라마 테크닉들은 일본 추리 소설에서 배웠고요."

    드라마 대본과 포스터 "역사 담긴 보물들"

    그가 쓴 작품들이 오랜 시간 무너지지 않는 건 성실한 고증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예' '견훤' '김두한'처럼 생생한 인물 캐릭터들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권력 다툼과 '주먹' 얘기가 많아 '남성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인물들이 입체적인 건 제가 객지에서 험한 생활을 하며 수없이 맞기도 하고 굴복하면서 힘의 권력을 몸소 느껴봤기 때문입니다. 옛날엔 '국졸'이라 '무식한 작가'라는 말을 듣고 괴롭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현실에서 가난이 뭔지, 모함이 어떤 건지, 배고픈 게 뭔지 직접 가슴으로 배웠습니다." 그는 "신문지가 얼마나 따뜻한지는 덮어본 사람만 안다"고 했다.

    대본 집필이 바빠 드라마의 인기를 제대로 실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작가의 영역을 침범할 때는 불같이 화를 내지만, 마감 시간에 늦지 않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책임감 때문이다. '용의 눈물' 집필 중 펜을 잡는 팔의 근육이 파열돼 대사를 구술로 부르기도 했다. 그의 작업실 다락에는 그동안 쓴 드라마 대본들을 비롯해 액자에 넣은 포스터들이 소중히 보관돼 있다. "내 역사가 담긴 보물들"이라고 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좌우명 '내려놓아라'

    그의 작업실 한편엔 '放下着(방하착)'이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용의 눈물' 제호를 쓴 초당 이무호 선생에게 받은 글씨다. '내려놓으라'는 뜻. '용의 눈물'이 한창 잘될 때 이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어느 순간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내가 너무 많은 걸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볼 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은 버리지 않았다. "'인간 박정희'에 대한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한 '인간'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이제 무르익었는데 죽기 전에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민족의 정신을 위해 대하 드라마가 꼭 필요하다"며 "짧든 길든 한 해에 역사 드라마가 꼭 한 편씩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정부로부터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빨갱이 가족' 낙인에 위축돼 살았던 그에겐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지어준 그의 이름은 '환히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용의 눈물' 방영 중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께서 보셨다면 이름처럼 잘 살았구나 기뻐하셨겠죠…."
    기고자 : 김민정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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