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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피아노 협주곡 4번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발행일 : 2023.11.06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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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병'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직접 연주… 부드럽고 섬세

    유난히 큰 공연이 많은 11월입니다. 이번 달 클래식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이 한 곡 있습니다. 바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작품번호 58이죠. 12일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리고 26일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과 협연 예정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프로그램이 이 곡입니다. 지난 3일 포항 음악제 개막 공연에서는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포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같은 곡을 연주했죠.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 다섯 곡 중에선 '황제'라는 부제가 붙은 5번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보다 3년 앞선 1806년 만들어진 협주곡 4번도 5번과는 대조적인 악상과 작곡가의 대담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걸작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번 달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이 곡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역대 넓은 새 피아노로 작곡

    협주곡 4번은 불굴의 투쟁 정신과 강한 에너지, 웅변적이고 스케일이 큰 악상 등이 특징인 베토벤의 스타일에서 조금 벗어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작풍이 나타납니다. 아울러 형식이 중요시되던 고전파에서 벗어나 작곡가의 자유로운 판타지(음악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악상의 자유로운 전개에 따라 작곡하는 스타일)가 강조되는 낭만파 정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죠.

    이런 큰 변화가 가능했던 데에는 당시 새로운 피아노의 영향이 컸습니다. 베토벤은 1803년 8월부터 에라르(Erard)라는 악기사가 제작한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악기보다 음역대가 넓어지고 음색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 피아노로 처음 만든 피아노 협주곡이 4번이었죠. 에라르 피아노로 베토벤은 자기 내면에 숨어 있는 다양한 감정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1808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명한 교향곡 5번 '운명', 6번 '전원' 등과 함께 초연됐는데, 작곡가가 직접 피아노 연주를 맡았습니다. 이날 공연은 귓병에 시달리던 베토벤이 피아니스트로서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음악회였습니다.

    새로운 악기와 새 각오로 만든 작품답게 이 협주곡에는 흥미롭고 파격적인 시도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협주곡 초연 당시, 청중들은 1악장 시작부터 깜짝 놀랐습니다. 독주 악기인 피아노가 먼저 작품을 시작했기 때문이죠. 당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먼저 전곡의 중요한 주제를 소개한 다음 독주 악기가 등장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베토벤은 그 틀을 과감히 깼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다양한 조옮김으로 악상의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피아노 역시 오케스트라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여 화려한 기교를 선보입니다.

    피아노와 현악 합주만으로 연주되는 2악장은 짧지만 인상적인 악상으로 채워져 있어요. 이 악장에 대해 독일 음악학자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가 해석한 신화 속 오르페우스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슬퍼하던 남편 오르페우스가 지옥의 문 앞에 도착해 아내를 돌려달라고 간청하고,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복수의 여신들을 음악으로 그려냈다는 주장입니다. 피아노가 오르페우스 역할을, 현악기가 복수의 여신 역할을 맡아 작품을 전개해간다는 해설이죠. 베토벤이 직접 설명한 내용은 아니지만, 신화 이야기와 곡의 극적인 전개가 잘 어울립니다.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의 2악장을 지나 등장하는 3악장은 정반대로 즐겁고 명랑한 분위기입니다. 같은 주제가 여러 번 반복되며 발전해 가는 론도 형식인 마지막 피날레 악장은 발랄하면서도 기교적인 피아노의 활약과 이를 입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오케스트라가 힘을 합쳐 클라이맥스를 만듭니다.

    협주곡 4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베토벤을 즐겨 다룬 피아니스트들의 뛰어난 녹음이 기록으로 여럿 남아있습니다. 독일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1884~1969)는 '건반 위의 사자왕'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짙은 호소력과 흔들리지 않는 기교를 통해 전달하는 베토벤의 세계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죠. 그가 특히 사랑했던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당당한 품격이 매력적이며, 행간에 숨어 있는 뉘앙스를 과장하지 않고 포착해 진정한 대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58년 지휘자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녹음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1931~) 역시 뛰어난 녹음을 여럿 남긴 베토벤 전문가입니다. 그가 만들어 내는 피아노 음색은 성실하게 갈고 닦은 아름다움이 있죠. 한 번도 힘든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을 무려 네 차례나 남겼는데, 이 중 세 번째 제임스 레바인 지휘로 시카고 심포니와 합을 맞춘 녹음(1983)을 추천합니다. 라이브로 녹음돼 생생함이 두드러지며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절묘하죠.

    팬데믹 속에서 맞은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단연 돋보인 인물은 루돌프 부흐빈더(1946~)였습니다.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빈 무직페라인에서 최고 지휘자 다섯 명과 함께 베토벤 협주곡 프로젝트를 녹음했어요. 협주곡 4번을 함께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로, 고색창연한 분위기와 세련미가 느껴집니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1982~)이 2007년 발표한 녹음도 색다른 면모가 드러나 흥미롭습니다.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파리 교향악단과 함께한 녹음에서 랑랑은 특유의 맑은 터치를 무기로 섬세하면서도 분명한 표현과 자유로운 템포 변화로 아기자기한 악상을 만들어냈죠. 아름다운 선율에 초점을 맞춘 해석이 돋보이는 연주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클래식 명곡도 잘 살펴보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숨은 이야기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위대한 작품은 파고들수록 점점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기고자 :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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