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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공포 모두 갖춘 'K귀신'으로 전 세계 홀렸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발행일 : 2023.11.04 / 사람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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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안톤 허 번역가

    "트라우마가 있는 곳에는 귀신 이야기가 있어요. 트라우마가 없는 민족은 없기 때문에 국가를 불문하고 '저주토끼'가 사랑받는 것 같아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지난 1일(현지 시각) 만난 SF·호러 소설집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47)와 이 소설집을 번역한 안톤 허(42·허정범)는 2017년 출간한 이 책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주토끼' '머리' '몸하다' 등 단편 10편을 묶은 이 소설집은 출간 첫해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18년 안톤 허가 발굴해 영어로 번역한 것을 계기로 세계 20여 국에서 번역·출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비영어권 작가 작품의 영어 번역본을 대상으로 하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번엔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꼽히는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 최종 후보 5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달 15일 수상자 발표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찾은 두 사람은 반드시 귀신이 등장한다고 다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판 소설집의 표제작(대표 작품)은 억울하게 몰락한 친구의 원한을 갚으려고 저주용품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저주토끼를 만들어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 '저주토끼'였다. 하지만 이번에 후보에 오른 영문판에는 '머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이 단편은 한 중년 여성이 변기에 배설물 등을 버리는 족족 변기 안에서 머리가 자라 결국 이 여성을 대체한다는 호러 소설이다. 이 단편을 앞세운 이유를 묻자, 안톤 허는 "영문판의 원칙은 재밌는 내용이 맨 앞에 와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보라는 "요즘 독자들은 장르 문학이나 사실주의, 이런 걸 가리지 않고 그냥 재밌으면 읽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전부는 아니라고도 했다. 웃음과 공포 뒤에는 풍자가 있다고 정보라는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회사의 부패한 관행, 동물 고문, 불공정한 거래 등 모든 종류의 과거 잘못이 '저주토끼'에 담긴 10가지 이야기에서 부활해 현재를 괴롭힌다"고 평가했다.

    실력 있는 번역가로 인정받는 안톤 허는 SF·호러 장르 외에도 앞으로 논픽션·K힐링·로맨스 등 세 가지 장르가 주목된다고 했다. 이 가운데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서사가 있는 K힐링 장르의 최근 인기 비결에 대해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고 서로 감싸주면서 힐링하는 이야기와 서사가 한국과 세계에서 장르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내년 2월에는 안톤 허가 번역한 정보라의 소설 '너의 유토피아' 영문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저주토끼'는 최종 심사에서 필라르 킨타나(콜롬비아)의 '심연', 아스트리드 루머르(네덜란드)의 '여성의 광기에 관하여', 스테니우 가르델(브라질)의 '남아있는 말들', 다비드 디오프(프랑스)의 '돌아올 수 없는 문 너머' 등과 겨룬다. '저주토끼'는 최종 후보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권 작품이다. 정보라와 안톤 허는 "출간된 지 조금 지난 책이라 솔직히 수상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에게는 수상보다는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모두 최종 후보에 오른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여성의 광기에 관하여'의 수상을 점쳤다. 전미 도서 재단이 운영하는 전미도서상은 소설·시·논픽션·번역 문학·청소년 문학 등 5부문에서 시상한다. 번역 문학 부문은 2018년 신설됐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김보영의 소설 '종의 기원'이 각각 2020년과 2021년 1차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 수상은 불발됐다. 15일 '저주토끼'가 수상할 경우 5부문을 통틀어 국내 최초 전미도서상 수상 사례가 된다.
    기고자 :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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