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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맹] (16) '뜨거운 안녕' 쟈니 리 "전쟁 고아였던 소년, 미군이 선뜻 거둬줘"

    채민기 기자

    발행일 : 2023.11.04 / 종합 A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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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쟈니 리(85·본명 이영길·사진)는 요즘도 서울의 라이브 바에서 노래한다. 1966년 '뜨거운 안녕' '내일은 해가 뜬다' 같은 히트곡을 발표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가수의 풍모였다.

    그는 6·25 때 미군 부대서 자라며 음악을 배웠다. 만주에서 태어나 평남 진남포 외가에서 지내다 열세 살 때 전쟁을 맞았다. "너라도 남쪽으로 가라"는 외할머니 말씀에 부산으로 가는 미군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이후 고아원 '해피 마운틴' 등에서 지냈다.

    "겨울에 고아원을 뛰쳐나와 부산역에 가니 미군들이 있었어요. 그때 제 손을 끌고 간 분이 양아버지예요. 이후 '하야리아(부산의 캠프 하이얼리어) 부대'에 들어가 생활했지요." 그는 "양아버지는 군수 물자를 총괄하는 책임자였고, 덴마크계로 '라스무센'이라는 이름만 기억난다"고 했다.

    취미로 피아노를 친 양아버지는 저녁이면 부대 장교 클럽에서 연주했다. "그때마다 '쟈니, 컴 히어' 하고 저를 불러요. 그러면 장교들 앞에서 '러브 이즈 어 매니 스플렌더드 싱' '플라이 투 더 문' 같은 노래를 불렀죠. 쟈니라는 이름도 양아버지가 지어주신 거예요." 이후 그는 서울로 올라왔다. 양아버지는 그가 열일곱 살쯤 됐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영화 '청춘 대학'(1966) 출연을 계기로 신세기레코드 전속 가수로 발탁됐다. "길옥윤 선생이 '내일은 해가 뜬다', 서영은(코미디언 서영춘의 형) 선생이 '뜨거운 안녕'을 주셨죠." '내일은 해가 뜬다'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가 훗날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유명해졌다.

    클럽 무대에서 활동했던 그는 식도암으로 고생하다 겨우 회복했다.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받은 지 20년쯤 지난 지금도 가끔 방송에 출연해 가창력을 과시한다. 그는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기고자 : 채민기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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