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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맹] (16) '키보이스' 기타리스트 김홍탁

    윤수정 기자

    발행일 : 2023.11.04 / 종합 A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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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8군서 합숙하며 음악… 딴따라 아닌 예술인 대접받아"

    "스탠딩 오베이션(standing ovation· 기립 박수). 아직도 잊히지 않는 미8군 쇼의 광경입니다. 곡이 끝나면 손뼉을 치는 문화가 아직 한국에는 없던 시절 미8군 쇼는 우리를 '딴따라'가 아닌 '예술인'으로 취급해줬죠. 그 자부심이 우리를 계속 연주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최근 경기도 양평의 라이브 카페 '옴니'에서 만난 가수 김홍탁(79)은 대화 도중 자주 간이 산소호흡기를 꺼내 썼다. 몇 년 전 앓은 기흉 후유증 탓이다. 그럼에도 그는 최근 열한 번째 밴드를 조직해 이 카페에서 라이브 활동을 준비 중이다. "신기하게도 기타 연주와 노래를 할 때만 멀쩡히 숨이 쉬어진다"며 웃었다.

    그가 결성한 첫 번째 밴드이자 음악적 뿌리는 1961년 동산고 2학년 시절 미8군 클럽에서 활동한 '캑터스(Cactus·선인장)'였다. 그리고 두 번째 밴드이자, 가수 윤복희의 오빠인 윤항기와 함께 미8군을 중심으로 활약한 5인조 그룹 '키보이스'가 그의 음악 인생을 바꿔놓았다. 1964년 7월 국내 최초 록 그룹 사운드 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를 발표한 것. 같은 해 신중현이 이끌던 밴드 '애드포'가 국내 최초 창작 록 음악을 선보인 1집 '빗속의 여인'보다 5개월 빠른 기록이다. 이후 키보이스는 미8군 바깥에서도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등 히트곡을 내며 '한국의 비틀스'란 별칭을 얻었고, 김홍탁은 히식스, 히파이브 활동까지 이끌며 국내 정상급 기타리스트로 성장했다.

    김홍탁은 "내가 기타를 본격적으로 잡게 된 것도 미8군과 연이 깊다"고 했다. 인천 내동 출신인 그는 동산중 2학년 때 놀러 간 친구 집 2층 세입자였던 한 미8군 흑인 장교의 기타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고 했다. "흑인들이 자주 치는 '부기우기(boogie woogie)' 주법이었죠. 어머니가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해 주신 통기타를 멋대로 뚱땅거리다가 듣도 보도 못한 큰 세상을 만난 거예요. 손사래 치는 미군에게 삼고초려 끝에 1년 6개월가량 기타를 배웠죠."

    당대 음악인들에게 미8군 쇼는 비약적으로 실력을 키울 기회였다. 더블A·A·B·C·D 순의 철저한 등급제를 거쳐야 무대에 설 수 있었고, 1년에 두 번씩 새 등급을 받는 심사가 계속됐다. 데뷔 후 한 번도 더블A를 놓치지 않은 키보이스도 "오디션 직전 3개월 동안은 미군 기지 인근에서 합숙 연습하며 음악혼을 불태웠다"고 했다. "당시엔 작곡, 편곡, 연주, 노래, 의상 다 전부 손수 준비했으니. 멤버들끼린 '요즘 오디션 경연 프로는 그때에 비하면 싱겁다'고 종종 농담했죠."

    혹독한 경쟁을 거친 키보이스의 미8군 등장은 "혁명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기존 미8군 쇼단은 최소 12~16인조 악단에 여성 무용수와 여성 가수를 선호했다. 하지만 키보이스는 남성 밴드 다섯 명에 여성 코러스 한 명만 올라갔는데도 "우리가 무대에 서는 날이면 미군 클럽마다 관객이 꽉꽉 들어찼다"고 했다. "하루에 '투 쇼(show)'를 뛰는 거의 유일한 밴드였죠. '비틀스'와 같은 밴드 음악이 세계적 인기를 끈 시대 흐름을 잘 탄 거지요."

    악보도 없던 열악한 환경에서 곡을 만들 원천은 오로지 미8군 클럽에서 흘러나온 주크박스, 혹은 '빽판(불법 LP 복제판)'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 것"뿐이었다. 당시 미8군 출신이 많이 낸 '번안곡'들은 "수천 번 모방으로 쌓여 결국 우리 가수들의 창작 홀로서기를 도왔다"고 했다. "키보이스 보컬 차중락의 히트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도 엘비스 프레슬리 곡을 한국 정서에 맞게 고치느라 고생했고, (윤)항기와 저의 작·편곡 공부에 큰 도움이 됐죠."

    김홍탁은 특히 최근 후배들과 함께 'K팝 뮤지션 명예의 전당'을 추진하면서 "미8군 무대가 당시 막 태동하던 한국 대중음악계가 걸음마를 빨리 떼도록 도와줬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고 했다. "지금은 묻힌 기록이 됐지만, 당시 여성으론 드물게 '록 음악의 선구자' 소리를 들으며 미군들을 미치게 만든 '미스 케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미8군 인기 가수가 많았어요. 식사로 치면 대중음악의 밑반찬을 다채롭게 만든 겁니다. 그들의 공이 분명 지금 한류의 밑바탕이 된 거겠지요."
    기고자 : 윤수정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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