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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리커창의 遺骨

    이벌찬 베이징 특파원

    발행일 : 2023.11.03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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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은 사후에 베이징 바바오(八寶)산 혁명 묘지에서 한 줌 재로 돌아가는 것이 관례다. 화장 후 유해 처리 방식에 대해서만 유언을 남길 수 있다. 1956년 마오쩌둥이 화장(火葬)을 국가 정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들 가운데 생전 바람대로 장례를 치른 이는 소수다.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도, 흘러가는 바다에 뿌려지고자 해도 사망 당시 정치 환경에 따라 바뀌었다. 마오쩌둥은 생전에 화장에 동의했지만, 1976년 9월 그가 사망하자 중공은 그의 시신을 영구 보존 처리한 후 수정관에 넣어 마오주석기념당에 안치했다. 같은 해 사망한 저우언라이는 "유골은 남기지 말고 모두 뿌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정작 장소는 중공이 정했다. 유해를 4등분한 다음 비행기를 동원해 베이징성(수도에 대한 애정 상징), 미윈저수지(치수 정책), 톈진하이허(혁명운동), 산둥빈저우(어머니의 고향) 등에 뿌려 그의 삶을 재정의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사망한 지도자들은 사후에 이름조차 뺏겼다. 1969년 감금 중에 사망한 류사오치 전 국가 주석과 1974년 권력을 잃고 쓸쓸하게 사망한 펑더화이 전 부총리의 유골은 가명으로 비밀리에 보관되었다가 사후 복권이 되고 나서야 바바오산에서 유골 안치식을 거행했다. 천안문 사태 직후 베이징에 가택 연금됐던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끝내 예우받지 못했다. 장례식은 바바오산 혁명 묘지에서 열렸지만, 유족들의 요청에도 유골은 그곳에 안치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의 중국 지도자는 사후에 권력의 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자 했다. 사망 직후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촉발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는 생전에 "나는 죽으면 바바오산에 가고 싶지 않아"라고 했다. 펑더화이는 "화원에 내 유해를 묻고 사과나무를 심어라"라고 했다가 "두 동생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을 바꿨다. 덩샤오핑은 각막을 기증하고 시신은 해부용으로 제공했다. 작년에 사망한 장쩌민의 유골은 상하이 창장 입구 바다로 흘러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2002년 사망), 화궈펑 전 중국 국가주석 등의 유해는 바바오산에 묻혔다가 이후 고향 땅으로 옮겨졌다.

    중국 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원하는 대로 마지막을 맞이하기 어려운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영향력이 사후에도 크다는 의미다. 리커창 전 중국 총리는 2일 화장됐다. 그의 유산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다. 6억명이 여전히 매달 19만원밖에 벌지 못하니 분배 아닌 성장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황허는 되돌릴 수 없다면서 개혁·개방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3월 총리직에서 퇴임하면서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했고, "물 아래에서 배를 밀겠다"고도 했다. 리커창의 유해는 어디로 가게 될까.
    기고자 : 이벌찬 베이징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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